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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현 Nov 01. 2024

출근길 단상

꿈꾸지 못하게 한다 할지라도...

차가운 공기가 여름의 흔적을 몰아내고 내륙에 자릴 잡았다. 평소보다 무거운 생각들이 음습하게 마음 속에 스며든다. 지난 여름과 함께 내가 내 삶 속에서 몰아내야 했던 나쁜 생각들이 곧 내릴 비처럼 머리 위에 둥지를 튼다. 나는 간신히 출근길로 기어나와 길 모퉁이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를 타고 환영처럼 내가 상처받았던 여름이 눈 앞에 펼쳐진다. 내 머리 위에 곧 닥칠 먹구름처럼 펼쳐져 우산도 없는 내 마음을 어지럽힌다.


불신과 걱정, 두려움이 유리천장처럼 어깨를 짓누르는데 삶의 부조리에 나는 날개 잃은 비둘기처럼 절망한다. 아직 살아 있는데, 다신 날 수 없는 그 비둘기는 맹목적으로 몸을 뒤척이지만 끝은 정해져 있다. 나는 아무도 그 비둘기를 도울 수 없음을 안다. 잃어버린 날개는 다시 돋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꿈꾸는 대로 성장한다고 지난 주말 읽은 책 속의 유능한 이들이 내게 비밀을 알려주듯 속삭인다. 난 수치스러워서 할 수 없다고, 내 유년기를 끝장내는 세상의 비열함이 날 늙게 하고 삶의 열정 차갑게 식는다고 투덜거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지옥같은 날들이 계속 되어도 밝게 웃으며 꿈꾸는 한 넌 우리의 일부라며, 꿈꾸는 사람들이 내 마음을 어루만질 때 그들은 상처입고, 피 흘린 채로 거인처럼 위대하게 서 있음을 말이다. 유리천장을 깨고 높이 솟아 내게 발견되기까지 그들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으며, 배신을 당해 감옥에 갇히고, 동료를 잃고, 세상에 혼자 남았다. 그들의 피 묻는 글이 내게 되묻는다. 날개 잃은 비둘기가 살기 위해 몸부림 칠 때, 정녕 그 삶은 의미가 없는 걸까?


단 하루를 살더라도, 몇 시간 밖에 남지 않았더라도 투쟁해라! 너의 자유와 과 너 다움을 위해서.


지난 일들은 내 날개를 갉아 먹고, 나는 유년기의 벅찬 열정 앞에 부끄러워서 자꾸 숨고 싶어지지만 그게 삶의 끝은 아니며, 찬란한 태양은 다시 떠오르고, 나는 살아있기 때문에 두 발로 다시 걸어내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발치에서 죽어가는 비둘기를 지나치며 나는 뿌리까지 끊긴 비둘기의 날개의 상흔을 잊지 못 한다. 하지만 일어서려고 몸부림치던 그 비둘기가 결국 눈을 감아도 눈 감기 직전까지 삶이 찬란하게 삶일 것을 이제 이해했다. 사랑과 용기, 용서, 희망은 비둘기를 마지막까지 꿈꾸게 할 수도 있고, 절망하게 할 수도 있음을.


빛이 없는 하늘은 곧 내릴 비를 품었지만 내 영혼에 드리웠던 유리 천장은 내 강한 동료들이 두 손으로 들어올려 부숴버렸다. 먼저 꿈꾼 이들이 이정표가 되어 수치심을 뚫고 나답게 계속 걸어가는 방법을 일러준다. 날 하찮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꿈꾸길 포기하는 내 마음이란 사실을 말이다.


때론 악에 받쳐 윽박질러서라도, 얼러서라도 나는 꿈을 이어가야 한다는 걸 비구름 사이에 얼굴을 내민 한 조각 푸른 하늘에 대고 소리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내 목소릴 들을 거인들이 그들의 책을 읽고, 그들의 꿈을 이해하고, 그들의 사랑을 이어받아 자신들을 영원히 살게 할 나를 지극히 사랑한다는 사실을 한 줄기 햇빛이 온 몸을 휘감듯 확실하게 느낀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꿈꾸는 사람들이 내가 속한 유일한 장소이다. 절망은 끊임없이 우릴 몰아치지만 사형을 당하는 그 순간, 나는 죽어도 아나키즘은 영원할 거라고 말한 어떤 아나키스트의 자유로운 외침처럼 삶이 우리 짓누르고, 날개를 자르고, 심지어 죽여도 꿈은 영원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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