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 인생을 선택한 거라면 그게 내 삶의 고통과 과오와 슬픔의 유일한 이유라면 나는 그때 뭘 본 걸까? 마조히즘적인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본 이 삶만의 가능성과 아름다움, 여러 의미들을 이제 이해하고 싶다.
인간이 태어날 때, 신께서 각 인간에게 질문을 하나씩 주셨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일 것이다. 그 질문에 답을 얻으려고 나는 이 생에 뛰어들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평생을 천착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유능함이란 무엇인가’를 알려고 밤낮으로 애쓴다. 또 어떤 사람에게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으로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자신을 다스린다. 아마 나는 좀 더 의욕적으로 대담한 질문을 골랐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을 때 호기심과 과감한 용기를 칭찬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나는 거침없이 세상의 기원을, 신께서 세상을 지으신 이유를 묻는다.
”그럼 네가 내려가서 사랑이 뭔지 배우고 오너라. “
누군가를 사랑할 때의 놀라운 슬픔을 44년간 가슴에 아로새기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도 사랑이 싫어진 나는 비로소 신의 깊은 사랑을 깨달아 간다. 감히 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어린애에게 신께서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사랑의 민낯은 오롯한 아픔이었다. 누군가를 끌어안기 위해서는 얼마나 부단히 아파야 하는지를 알려줄 수밖에 없었을 신의 슬픔 또한 살아가는 걸음, 걸음에 아로새기면서 나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서툰 대답으로 날들을 시작한다.
나를 아우르는 새하얀 겨울 낯빛엔 어떠한 따뜻함도 깃들어 있지 않지만 나는 비로소 사랑을 알며, 사랑을 느낀다. 새들이 날고, 소나무는 꼿꼿이 푸르며, 낙엽이 거칠게 말라가는 나무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기도하는 아침에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계속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