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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조와 덕이 Aug 22. 2023

푸드덕 내 앞에 내려앉은 멧비둘기


8월 무더운 여름날 문득 홀로 집을 나섰다. 차로 10여분 거리의 호수 공원. 어느 시간에 가도 늘 사람들이 많다. 이른 아침이든 조금 늦은 점심 때든, 뙤약볕이 중천에 뜬 시간에도 해질 저녁 무렵에도 사람들이 부지런히 걷고 있다. 자세히 보면 둘넷 가족들도 보이지만 홀로 걷는 이들도 상당하다. 이런 곳을 혼자 찾은 것이 처음이니 신통할 일이다. 어딘가에 갈 때는 꼭 누군가와 함께 갔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산도 홀로 가는 일이 드물었고 학교 뒷산도 혼자 오르지 못했다. 주말이 오면 동반할 이를 물색하다가 마음만 산으로 들로 보냈다. 이제야 때가 된 것일까?


홀로 나선 길은 모든 시간이 오롯이 내 시간이었다. 번잡하던 생각들이 훠이훠이 날아가고 한 길로 남았다. 잘 정돈된 공원은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까지 덤으로 누군가가 걸어주기를 바라 듯이 길이 열려 있었다. 어느 날 우거진 나무 그늘을 지나는데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내 머리 맡을 스치며 푸드덕 멧비둘기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인기척이 나면 달아나는 게 보통인데 신통했다.


 '어머 이 애가 나를 아나' 싶어 하며 카메라를 들이댔는데도 달아나지 않았다. 아장아장 말 그대로 정말 '깔롱지게 뽄지게' 내 앞을 걸었다. 마치 같이 산책을 하자는 듯. 다른 이들의 발소리에 놀라 날아가기 전까지 거의 3분 넘게 영상에 담았다. 앞서 걷고 부리로 뭔가를 쪼고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혼자여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오롯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느끼고 그러는 나 자신도 볼 수 있었다. 저기 걷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의 생각을 안고서 걷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누군가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17년 동안 티베트의 숲 속 승려로 수행한 스님에게 수행의 결과를 물었더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단다.


그 말에 잠시 귓가에 징이 울렸다. 그리고 박수를 치고 싶었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하는지, 그 생각에 함몰되어 수없이 감정 기복에 휘둘리는 필부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 지금 떠오르는 이 생각들이 다 맞는 건 아니야.'라고 할 수 있는 자세,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다. 걷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신체의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에도 매진하고 있는지 모른다. 걸으며 스스로의 생각도 가다듬는 것이리라. 그건 홀로 걷는 걸음이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 


낮은 산을 끼고 앉은 호수 둘레길은 탁 트인 하늘과 주변에 잘 정리된 수목이 어우러져 멋스럽다. 시간대별로 계절별로 보여주는 그림이 다르다. 이른 아침에는 호수 위에 산그늘이 그대로 비친다. 수면이 유리 거울 같은 시간이 있다. 햇살이 좀 더 퍼지면 그 산그늘이 사라지고 대신 햇살이 온 누리를 싸고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에는 그 빙판 같고 거울 같던 수면이 또 얼마나 정갈하던가. 


푸드덕 내 앞에 내려앉던 그 맷비둘기는 어쩌면 홀로인 나를 응원하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홀로의 시간을 찾아 나선 첫 발걸음을, 이제야 홀로 사색을 즐길 준비가 되었음을 축하해 주고 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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