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꽃 Sep 01. 2023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북향에 앉은 사무실은 복도 쪽으로 창문이 없었다. 건너편 남향에 앉은 부서의 창고로 쓰이던 자리에 우리 부서가 들어선 것이다. 1층이지만 햇살이 안 들어 낮에도 반지하 같은 느낌이었다. 요즘처럼 유리문으로 교체 전이어서 문을 열고 들어서야 사무실 안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무로 된 출입문이 덜컥 열렸다. 커다란 키에 고약하게 생긴 사람이 고함을 지르기 전, 열어젖히는 문 소리에 앞에 앉은 우리는 가장 먼저 일어섰다.


"야! 너 것들! 밥 안 사나"


다들 깜짝 놀라서 일어서고 있었다. 우리 쪽을 바라보는 시선에 얼떨결에 빚쟁이가 되었다. 아! 엊그제도 와서 밥사라 더니 또 생색을 내러 왔구나! 모두 몰래 웃으면서 일어나 인사했다. 총무과의 인사 팀장이 오셨으니 말이다. 그 당시 어디서나 반말을 하고 하대하는 사람이었다.


한창 근무 시간에 느그적 느그적 남의 사무실에 등장한 사람. 그 당시 사무관 발령을 기다리며 인사팀장 자리로 옮긴 사람이었다. 인사팀장의 서설이 얼마나 퍼랬는지 특히나 고약한 입버릇은 온 학교를 흔들었다. 팔자걸음으로 안 가는 부서가 없었다.


전입 3년 차 즈음이었다. 엊그제도 밥을 사라고 외었는데 정말 우리 00 업무자 셋이서 밥을 사야 하는지 어리벙벙했다. 저쪽 팀에는 댓 명인데 반하여 이 쪽 팀은 나 포함 2명이었다. 일이 늘어나면서 그나마 최근에 여직원 1명이 추가되어 3명이 되었는데 그 배정을 본인이 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밥을 사라고 일종의 대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팀장도 있었고 과장도 있었지만 웃고들 있다. 그 반말에 누구 하나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없었다.


"너 것들! 밥이 아니라 술을 사야 한다."


"그것도 그냥 술을 사면 안 되고 너희 셋이 한복을 쫙 빼입고 술을 사라!"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근무시간이었다. 인원 충원을 해주었다고 후배 여직원들에게 와서 밥을 사라고 외더니 이제는 한복을 빼입고 술을 사라고 한다. 요즘 같으면 완벽한 성희롱이다. 그때가 2008년 즈음이었다. 어제일 같이 생생하다.


그는 사무관으로 인근 대학에 갔다가 복귀하여 학내 과장으로 퇴직했다. 지금도 학내 사안에 심사위원으로 왕래하는 모습을 간혹 본다. 그런 횡포를 부린 이는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어쩌면 기억도 못할 것이다. 당한 사람은 아주 오래도록 진저리를 쳤는데도 말이다.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은 제 얼굴이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수년간 혐오를 주는 언행은 하지 않아야 한다.


한 번쯤은 이의를 제기하고 이야기를 했어야 좋았을까? 그랬다면 그 시절의 분위기로는 마녀사냥을 당했을 것이다. 자기가 나름 한 시절을 기여했다고 자부할 텐데 제가 저지른 행위가 얼마나 그릇되었는지 상상도 못 한다. 그러니 시대가 변하는 만큼 공부해야 한다. 자신이 빠질지도 모르는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변화를 배우는 공부가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