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맨 앞에 한 칸 당기고 김샘도 한 칸 앞으로 가라! 강사님도 거기서 하지 말고 옆으로 좀 나와서 하세요!'
필라테스 수업시간, 강사를 따라 이제 막 동작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뒤에서 누군가 빽 소리를 질렀다. 김샘이라고? 여기에 김샘이 있나? 김 과장님을 말하는 건가? 수강생들 맨 앞에서 동작을 하시던 강사님의 얼굴이 순간 경직됐다. 그래도 구령을 놓치지 않고 이어간다. 7~8명이 일직선으로 서서 동작을 따라 하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강사님이 앞에 서 계시니 뒤쪽에선 보이지 않았나 보다. 20대의 젊은 필라테스 강사님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훤히 보이는데 되려 앞의 우리 표정을 살펴본다.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는 것도 보였다.
학내에 체육진흥원이 생긴 지 두서너 해 되었다. 1층에 대형 수영장을 갖추고 2~3층에 요가 필라테스 헬스장까지 갖추어 인근 시민들도 많이 사용한다. 오픈한 첫 해였을 것이다. 얼떨결에 필라테스 대기구 과정에 등록했었다. 그날은 기구 사용 전에 맨 손 체조 비슷한 동작을 하던 중이었다.
보통 5~6명 정도였는데 그날따라 7~8명이 되었고 경험이 적은 젊은 강사님이 수강생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고 앞쪽에서 동작을 하신 것이다. 수업 초반에 갑자기 뒤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으니, 그것도 지시하듯 항의했으니 얼마나 놀랐겠나?
항의를 하며 앞쪽에 있는 과장에게 고함을 지른 것이다. 그것도 늦게 와서 뒤쪽에 선 과장보다 몇 살 많은 팀장이었다. 김샘이라고 언급한 사람은 김 과장이었고 김 과장을 한 칸 앞으로 나아가라고 소리친 것이다. 그들은 젊은 날 서로 선생님으로 부르던 사이였다. 순간적으로 화를 내면서 그 팀장이 앞에 선 과장 두 명에게 명령조로 말한 것이다.
강사님이 앞사람만 잘 보이게 지도하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화를 내다보니 옛 호칭이 나왔나 보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갈 때까지 강사에게도 그 과장에게도 주위 사람들에게도 사과한마디 안 하고 갔다.
몇 날을 삭이다가 김 과장은 그날 같이 참석했던 다른 팀장에게 전화를 했단다. 그런데별 문제 아니라고 행패 부린 팀장을 두둔하더란다. 결국 그 말을 한 팀장에게 전화를 하여 털어버리려 했는데 오히려 그녀의 대답이 한 술 더 떴다. '6시 퇴근하고는 팀장이고 과장이고 그런 것 없다고, 거기서 자기가 과장님이라고 호칭해야 하냐'라고 소리치더란다.
서로 간의 존중이 실종된 예다. 동료로 지내다가 과장이 된 이에 대한 배 아픔이 아닐까 싶었다. 상대를 하대하면 자신들이 올라가는지. 세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해도 다양한 직종들이 어우러진 집단에서는 간혹 이렇게 상식도 통용되기 어렵다.
젊은 층들이 퇴근 이후는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마주쳐도 인사를 안 한다는데 그건 한편 귀여운 모습이다. 퇴직을 앞둔 장년층들이 공중도덕도 무시하고 함부로 하는 행태를 보면 야수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대접을 받는 자 탓이고 부덕의 소치일지도 모르겠으나 직장의 수준이 동반 추락하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던 그 과장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