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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꽃 Apr 01. 2023

저만 바라보고 저만 생각하는 사람


회의 시작 2분 전에 회의를 15분 연기한다는 문자가 왔다. 출근 전부터 단톡방에는 오늘 회의 장소를 물색하라는 부장의 문자가 있었다. 주 1회 정례회의는 통상적으로 부서장 집무실에서 다. 모든 부서장의 방에 긴 테이블과 의자가 비치된 이유도 그래서다. 그런데 부서장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회의하는 것을 싫어했다. 동안 연이어 3차례 정도 별도 회의실에서 회의를 했고 그 회의실이 다른 용도로 바뀌면서 회의 장소가 필요해진 것이다.


행정팀에서 부득불 공간을 물색하다가 먼지 쌓인 회의실을 하나 찾았고, 정해진 장소에 갔더니 팀장 5명과 부장은 도착해 있었다. 연기한다는 문자가 늦게 오는 바람에 다들 대기 중이었다. 15분을 연기하고도 5분여 더 지나서 부서장이 들어왔다. 반갑다거나 늦어 미안하다는 인사는 없었다. 굳은 표정에 모두들 얼음이 되었다. 왜 저렇게 화가 났을까? 업무가 과중한 건지 중간자들이 뭔가를 놓친 건지. 회의 자료가 산적함에도 팀별 보고에 앞서 몇 가지를 따지겠다 했다.


"회의 전에 다른 스케줄은 없는지 그 시간에 회의가 가능한지 회의장소는 어디인지 연락을 해주는 게 맞지 않소?" 일동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부서장에게는 비서가 있다. 비서는 일주일 전에 부서장의 스케줄을 작성하여 팀장급 이상 단톡에 올리고 메일로도 보내왔다. 그 스케줄에 맞춰왔는데 한 번 더 자신에게 연락을 해주길 바라는 건가? 그렇다면 누가 다시 연락을 해줘야 하지? 비서 말고 행정팀에서 연락을 안 해서 지금 화가 난 것일까. 


부서장이 스케줄을 확정했으면 당연히 본인도 지켜야 한다. 사정이 생길 경우 비서를 통하거나 직접 알려오는 경우가 많다. 분위기는 누군가 사전 연락을 안 한 것이 잘못이라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모두 맞추자고 정한 회의시간도 지위가 높은 부서장 자신에게 맞춘 거 아닌가. 자신이 지키지 못했으면서 미안하지 않고 왜 탓을 할까? 


회의 장소가 화두로 떠올랐다. 한 팀장이 했다. 본부의 모든 부서가 부서장의 집무실에서 회의를 한다고, 우리도 별도의 회의장소를 찾기보다 집무실에서 했으면 한다고. 그러자 "내 방이 무슨 다방도 아니고 왜 내 방에서 회의를 해야 해요?" 했다.


규정에도 없는  가지 일을 주문해 놓고 화를 참지 못하고 벌게져서 불쑥 나갔다. 오늘 회의는 시작도 못하고 서면으로 대체한단다. 머리도 하얗고 얼굴도 하얗고 마음은 하얗지 않을 것 같은 최고 연장자 부서장이 쌩하니 나가버렸다. 오늘 회의는 서면으로 대체한다고 하고,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급한 사안은 부장 주재로 정리됐다. 남은 자들은 두 종류였다. 상처 입은 사람과 상처 입지 않은 사람. 그런 부서장을 두둔하는 자는 상처 입지 않은 듯했다. 


부서의 장은 모두를 아우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자리에 앉아있지 않은 직원까지 포함하면 대 군사를 이끄는 사람이다. 많은 결정 권한과 기회를 가진 자들이 본인의 기분대로 분위기를 휘두르는 모습은 횡포이고 폭력이다. 무얼 추구하는지 무얼 하러 그 자리에 앉아있는지 머리가 희끗한 사람도 모르는 경우가 있나 보다. 어느 한쪽이라도 불편하다면 돌아봐야 하는데 제 쪽만 보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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