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조와 덕이 Mar 16. 2024

도심에도 목련이 피었네요

딸 만나러 갑니다


가만 챙겨본다. 콩나물, 시금치나물, 표고나물, 겉절이, 깍두기, 잡채, 브로콜리 숙채, 전, 마늘대 무침, 그리고 대파랑 양파 반쪽도 쌌고 고추장에 찍어 바로 먹을 수 있는 잔멸치도 한 주먹 넣었다. 얼음 팩을 깔고 냉장가방에 담으니 제법 무거웠다. 신랑이 케리어를 꺼내왔다. 딸에게 간다. 이제 버스가 출발하려나 보다.


남강 강변을 건넌다. 햇살이 저만치 떠올라 더 밝아졌다. 터미널 한쪽에 목련을 소복이 세그루나 피워놓은 봄기운을 따라 오늘은 북쪽으로 이동한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 점포들이 새롭다. 버스 타는 묘미다. 동쪽 햇살을 받는 버스 속으로 아침 햇살이 제법 예리하다. 건물마다 끼고 있는 화단에도 흰꽃들이 피었다. 매화인가 보다.

 

그저께 작은 아이가 사용하던 노트북을 가져다 켰었다. 제 언니가 사용하던 걸 받아 쓴 지도 서너 해 되었을 텐데 매번 새것을 사준다 해도 사양했다. 부팅을 하는데 비번이 내 음력 생일이었다. 모든 식구 생일을 양력으로 기억하는 애들이다. 제 언니 때부터 그 번호를 썼다고 했다. 받은 녀석도 바꾸지도 않고 사용했다니. 부모가 되고 나서 받는 작은 감동이 이런 것이다. 큰 아이는 학창 시절부터 내내 엄마 생일의 비번을 단 노트북을 켜고 끄고 해 왔다는 말이다.

 

아이가 바쁠 때 내가 시간이 더 날 때 간간이 아이에게 간다. 저도 다 컸다고 매번 엄마를 챙긴다. 제 옷장을 열고 이거 입으시려입어 보시라 그래 놓고 맞으면 입고 가라고 우긴다. 저는 또 사면된단다. 저 쓰는 화장품도 한 번 발라 볼라치면 그것 새 제품으로 사드릴까 묻고 보내온다. 참 아이들이 니 재미난다. 우리 엄마도 우리가 성장했을 때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을까? 만들어 드렸던가?


고속도로 변 먼산에 붉게 핀 꽃은 홍매화라기엔 너무 붉은데 지나쳤다. 조만간 도화도 필텐데 도화 이화가 흩날리면 엄마 만나러도 한 번 가야겠다.


아이 얼굴도 보고 먹는 것도 좀 보고 와야지. 아직 잎이 나기 전인 들판 나무 아래에 새파랗게 풀이 돋은 곳이 있다. 땅 끝에서부터 봄은 시작되고 키다리 나뭇가지 끝으로  봄은 번지는가?


생업에 쫓기느라 시간을 많이 나누지 못했다. 부모님과도 그랬고 아이들과도 그랬다. 좀 더 부지런했더라면 좋았을 걸. 이제부터라도 마음 가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실천하려 한다.

 

아이에게 가려고 틈틈이 준비했다. 하루는 퇴근하며 장을 보았고 그제는 나물을 만들었고 어제저녁엔 김치를 담그고 잡채를 했다. 작은아이가 대파 전 부치는 걸 도와줬다. 한점 크기로 어찌 그리 이쁘게 부치던지 속으로 웃음이 났다. 제 입으로도 '시집가도 되겠지? 하며 귀염을 떨었다. 


올봄 아직 목련을 맞을 준비도 여력도 없었는데 불쑥 와 있는 절을 또 느낀다. 시간이 없었던 건지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건지 자꾸만 달려가는 마음을 좀 가라앉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결같이 사람을 존중하는 모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