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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조와 덕이 Mar 26. 2024

실천 유학자 남명 선생님을 배우다

'아카데미 남명' 김영기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지난 목요일 저녁 '아카데미 남명' 수업이 있었다.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사)남명사랑 상임대표이신 김영기 교수님의 강의였다. '남명 조식과의 대화 - 경남의 역사적 이해'라는 주제로 '우리 역사 제대로 읽기 - 남명 조식, 누구인가?'라는 강의였다.  


주어진 100분은 전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을 수 없었다. 스스로 사회학자가 읽은 '남명'이라 낮추시는 모습이 무색하게 남명 선생님에 대한 사랑과 연구가 교재에도 가득했다. 주말을 보내고 이제야 강의(안)를 다 읽었는데 동분량의 참고자료가 아직 남았다. 아껴보는 것인지 우리 세대가 알아야 하는 역사적 사실의 무게를 접할 마음을 다지는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강의 자료만 60페이지가 넘었고 뽑아서 정리한 참고자료가 또 60페이지가 넘는다. 그동안 남명 선생님 자료를 어디서 더 찾아 읽어볼까 했는데 수십 권의 책 엑기스를 정리해 놓으셨다. 강의 전에 귀한 시간을 서두를 법도 하건만 방문한 사람(시장님)에게 할애하시고 이어서 시작된 강의는 절규 같았다. 남명 조식 선생님을 한 명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해왔다.


경상우도의 숨겨진 선대들의 업적(문익점 목화 도입, 남명 조식, 남명학파 의병단, 진주농민항쟁, 진주 형평운동, 마산 3.15 의거, 부마민주항쟁 등(김영기 2024:47))을 전하려는 마음이 절절이 베인 강의였다. 아울러 후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밤을 새도 부족하셨을 것이다.




지난해 9월 '아카데미 남명' 첫 강의는 이덕일 소장의 '한국통사 - 다시 찾는 7천 년 우리 역사'로 시작했다. 역사 바로 알기부터가 모든 강의의 시작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한명기 교수님의 '반정인가? 찬탈인가? 인조반정 제대로 읽기'에서는 광해군 몰아내기 전후의 일에 대하여 객관적인 판단 과제를 제시했고 최석기 교수님은 '남명학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소개해 주셨다. 윤종록 전 차관님의 '후츠파로 일어나라 - 7가지 처방에 담긴 유대인의 창조정신'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밥상머리 교육부터 후츠파 정신과 문화를 소개해 주셨다. 그 일련의 역사적 과정들을 이해해야 남명 조식선생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진주와 경남의 선대들이 남긴 정신과 문화는 이스라엘 후츠파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콘텐츠(김영기 2024:106) 임을 말씀하신다.


그동안 많은 분들의 명 강의를 지나 '아카데미 남명'을 기획하고 추진하신 분의 마음까지 담았을 강의는 정말 궁금하였을 것이다. 왜 남명이 재 조명되기 시작했고 왜 지금 그분의 사상이 필요한지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지, 그건 누구 한 사람만이 할 수 있지 않기에 지속적으로 나누고 연구해야 할 분야임을 제시하셨다.


2년 전 경남문화연구원의 경남학 심포지엄 책에도 김영기 교수님의 남명사랑 글이 있었다. '사회과학자가 읽은 남명 조식, 그리고 새로운 과제'였다. 그 말미에 대학에 제안한 과제가 있었다. 교양과정과 연계하여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이수한 경우에는 남명학강사 자격증을 주면 좋겠다는.


그러면 실제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남명 선생님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벌써 조사를 하셨다. 96~98%까지 퇴계와 율곡 선생님은 알지만 남명 선생님은 25% 정도가 알고 있단다. 교과서에 실린 사람과 실리지 않은 사람의 차이일 거라고 하셨다.


몇 년 전 행정고시를 합격하고 고위직인 어떤 분이 남명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시던 모습을 보았다. 소개하시던 서기관님도 왠지 조금 부족하게 남명 선생님을 설명하셨고 나 역시 뭐라고 보탤 수 도 없었다. 이런 상황인데 지금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설명할 것인지, 남명학 강사를 양성하려면 어떤 커리큘럼을 짜야할지 궁금했다.




남명 조식 선생님은 1500년대를 살아간 조선의 실천 유학자이다. 19세 때 기묘사화로 가족이 화를 입었고 훈구세력이 무오. 갑자사화 등 각종 사화에 엮어 사림파를 척살하던 시대를 보고 입신양명의 출세길을 접었다. 논어 맹자를 책에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필요함을 깨쳤고 그렇게 '실천유학'을 만들어 생활 속에서 스스로를 극기하고 제자를 길러내셨다. 그런 실천유학을 배운 제자들이 의병장(정인홍, 최영경, 오건, 김우홍, 곽재우, 조종도, 하항, 유종지, 정구, 김면 등(김영기 2024:99))이 되어 임진왜란을 극복하게 했고 수차례 조정에서 내린 관직을 마다하고 평생 재야에서 살았다. 수기치인의 성리학적 토대 위에서 실천을 중시하며 경(敬)과 의(義)를 강조했고 지행일치의 행동유학을 실천에서 찾아야 한다고 실제로 보여주셨다.


송대 계급지배를 정당화하는 학술이었던 주자학만을 신봉하였던 퇴계와 율곡의 주자학당과 다르게 남명은 중국 유학 중 고대 선진유학(공자 맹자 순자학문)과 신유학(정주학 이학 주자학), 양명학, 불학, 노장학까지 섭렵하여 통섭을 이루셨다고 한다.


퇴계는 '주자만이 내 스승이다'(김충열, 2008:459)라고 단언하고 불학, 노장을 배척하고 주자학보다 신학문인 양명학까지 '전습록변'을 써서 비판함으로써 후학들이 양명학을 이단으로 몰아 배척하게 만들었다. 현재의 우리 유학계도 조선시대 주자학당이 세를 주도하였듯 남명과 대곡, 화담 연구 그룹은 비세가 되어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 한다. 학문활동은 진리의 탐구가 본질이라고 충분한 학술 토론이 필요함을 말씀하신다.(김영기, 2022:41)


남명의 사상은 묻히고 금기가 되었으나 사후에 3명의 군왕(선조, 광해군, 정조)이 제문을 내려 제사를 지내게 했다. 조선에서 처음 있은 일이라 다. 목숨을 걸고 백성을 보살피는 정치를 요구했던 상소문의  표본이 된 을묘사직소와 마음을 다스리는 핵심적인 내용을 한 장의 도표로 그린 신명사도 그리고 혁대명, 성성자, 경의검 등은 다른 지면에서 적었었다.(도를 알고 체득하는 학문을 하기로 한 사람- 2023.12.19. 브런치스토리 글 참조)


동시대 유학자 퇴계의 수차례 비방에도 남명은 '퇴계가 나를 욕해도 도가 온전하다면 누가 나를 욕해도 내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셨다.(김영기 2024) 우러러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남명 조식선생님에 대한 궁금증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지리산 밑에 살아도 눈 뜬 봉사였음을 알게 되었다. 최소한 자녀들과 형제자매 가까운 지인에게는 남명 선생님을 제대로 말해주고 싶다. 올해는 지리산을 조금 다른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김영기교수님 강의 자료)


(출처: 김영기교수님 강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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