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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조와 덕이 Mar 28. 2024

레몬이 열리지 않는 레몬 트리

30분 일찍 귀가한 날.


조용한 거실에 앉아 사과를 하나 먹었습니다. 아이가 약속이 있다 하니 오늘 저녁은 묵은지에 두부를 으깨어 넣고 고춧가루 듬뿍 넣어서 콩나물 국을 끓일 계획입니다. 묵은지 다져 넣고 김치볶음밥도 까요? 몸에 좋다는 당근 양파 다져 넣고 땡고추에 마늘까지 다져 넣으면 한 맛 더 나겠죠? 불 끄고 김가루에 참기름 통깨까지 뿌리면 진한 국물과 함께 먹을 만할 거예요.


거실에 둘러선 나무들을 세어봅니다. 레몬트리가 아홉 그루입니다. 일어서면 내 키보다 더 자라서 1미터 80까지도 달릴 추세라 댕강 잘랐었는데 의외로 생장점에서는 양갈래로 새순이 나지 않더군요. 저도 삐졌는지 거의 반년이 지나고 이제야 새순이 솟네요. 그것도 겨우 한 두어 그루만 그렇습니다. 키워보니 레몬 나무는 의외로 물 쟁이입니다. 어쩌다가 잎사귀만 무성한 레몬 나무가 즐비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는 한 참 올라갑니다. 벌써 3~4년 전이군요. '어느 채식의사의 고백'과 '지방이 범인' 등의 책을 재미나게 보면서 자연식 채식에 빠졌었지요. 우리 식생활이 크게 바뀌기 전인 70년대에는 당뇨병 심장질환 뇌질환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보고서가 믿음이 갔습니다. 육식이 보편화되면서 서구식 식생활이 가져온 병이 많더라고요. 신선한 채소로 샐러드를 많이 해서 먹었습니다.


맞아요. 샐러드 소스를 만들기 위해서 레몬을 간간이 사 왔지요. 그 타원형의 레몬 속에는 레몬 씨가 있었는데 누군가 그 씨앗을 벽장 속 어두운 곳에 넣어 두었으리라곤 몰랐지요. 물을 흠뻑 뿌린 화장지에 씨앗을 감싸 그렇게 제법 두었나 봅니다. 어느 날 꺼낸 그곳엔 세상에나 뿌리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발아가 된 거지요. 스치로풀 박스를 꺼내오고 흙을 사 와서 심더라고요. 손가락만 하게 싹이 올라오던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분가를 시켰지요.


화분을 여러 곳에 나눠주지 않았다면 30여 개는 되었을 겁니다. 그 넓은 이파리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키는 어쩌면 그렇게 잘 자라던지. 이제나 저제나 꽃이 피기를 처음 두세 해에는 손을 꼽았지요. 이제 기대를 접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4년과 5년이 되어도 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을 요량입니다. 잎을 보며 키우려 합니다. 간혹은 그 잎을 문지르면 진한 레몬 향이 베어납니다. 익숙해져서 일까요 아니면 물을 두어 번 빠뜨려서 인지 뿌리 쪽은 늘 노랗습니다. 줄기 끝은 생생한 새순이 자라 나가는데 말이죠.  


이렇게 거실에 앉아 감상하기에도 푸르른 잎사귀들은 싱그럽습니다. 산세베리아 스킨답서스 파키라  인도야자 등 이름도 모르는 나무들 사이에 군락을 이루는 레몬나무가 능숙하게 반려식물이 되었습니다. 혼재 혼합 그리고 어울림인가요. 좀 다르고 좀 특이해도 섞이고 어울리면 제 색깔을 내는 건 자연에서도 사람들에게서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부족하고 모자라도 힘내보려 합니다.


가만 생각하니 늘 이렇게 자책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이게 또 강점일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글들을 묶어서 주문형 출판을 해보려고 합니다. 브런치북을 풀어서 매거진으로 만들었어요. 매거진의 글 30개를 모아 부크크로 연동해봤답니다. 부족하고 모자라도 창피해하지 않기. 유튜브에서 누군가 그런 용기를 주문했습니다. 레몬이 열리지 않는 레몬트리도 무성하듯 부족한 글도 묶어보고 읽어보려 합니다. 내용과 뜻이 좀 무성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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