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요즘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조와 덕이 Apr 03. 2024

님의 동선을 알 수 있는 방법

쉼 없이 동그라미를 그리는 비


사무실에서 내다보면 아래층 옥상 바닥이 보입니다.


빗물이 톡톡톡 떨어지며 수없이 많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걸 볼 수가 있어요. 물이 모이는가 싶은데 어디론가 다 빠져나가는 걸 보면 옥상 배수가 잘 되나 봅니다. 빗줄기가 쉼도 없이 퉁탕거려 놓고 사라져 버립니다. 아무리 빠른 사람이라도 손으로 저렇게 물을 쳐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려지는 동그라미를 보면서 빗발의 세기와 강수량을 점쳐봅니다. 요즘은 며칠 걸러 비가 오는데 온종일 저러고 있는 건 참 드문 현상이라고 합니다. 어지간히도 봄이 마땅찮은가 봅니다.


미세먼지에 칼칼한 바람까지 어제는 온종일 구름도 데려다 놓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그 칠 새 없이 마음까지도 꼽꼽하게 만듭니다. 페퍼민트 차를 한 잔 가져왔는데 의외로 맛있네요! 작두콩 차나 돼지감자 차를 주로 마시고 간간이 커피를 마시는데 누군가 들린다는 말에 차를 얻어왔지요. 감기 기운으로 마스크도 벗지 않고 가는 바람에 준비한 차는 제가 마시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청하여야만 차를 나누고 말을 나눌 수 있더라고요. 이런 날에는 누군가 부르지 않아도 방문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습니다. 다들 바쁜데 저만 한가할까요? 저 역시 비 사이로 건물을 뛰어다니며 일을 하고 왔답니다. 생업은 바쁘지만 그 속에서의 고요라고 할까요. 간절해지는 대화, 이야기 뭐 그런 게 있습니다. 끝도 없이 속에서 나오는 우문과 우답, 그 연속이 일상인 것 같습니다.


잠시 틈을 내어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 가방 빌려다 놨는데 그 속에 빠져들면 몰입할 것 같아서 자꾸 여유를 부립니다. 금요일 저녁에 이야기하는 곳에 들리려면 두 권짜리 소설을 다 읽어야 하는데 시작도 안 하고요 이렇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아침에 읽은 브런치스토리의 글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수많은 작가들이 쓴 글을 읽습니다.


편리해진 시절에 감사해하며 이쪽저쪽 방향을 틀어가며 누워서 모바일 폰으로 글들을 따라갑니다. 웃고 울지는 않아도 그 누군가의 쉼 없는 쓰고 싶음에 공감하면서 그들의 일상과 주장과 외침들을 읽어요. 어쩌면 그 수많은 작가들의 글들이 저 빗줄기 같은 게 아닌가 싶네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헤아일 수 없이 다양한 이야기가 브런치스토리 공간에 펼쳐지니 말이지요. 배수로가 잘 되어 있어서 순식간에 수만 명이 순삭 하며 읽어서 흡수하고들 있겠지요.


이런 날 온종일 구름이 포진한 날에는 그 꼽꼽한 기운만큼이나 더 할 말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왠지 자꾸 저도 뭔가를 쓰고 싶어지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지니 말입니다. 누구도 오지 않고 연락 주지 않고 만날 이도 없지만 이곳 브런치스토리는 내 글을 받아 적어 줍니다. 내일도 시간이 된다면 들러서 컴퓨터를 켜고 두런두런 모자란 글 읽어주겠지요? 구독도 안 누르고 좋아요도 안 누르겠지만 그래도 통계를 매일 확인하고 있으니까 나는 님이 방문한 걸 압니다.


유튜브에서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이라고 하던데 브런치스트리에서는 구독은 부담이고 라이킷은 위로이기는 합니다. 그냥 들어와서 나가도 방문 통계만으로도 기운을 내니까 그렇게 홀연히 왔다가 가셔도 됩니다.


오늘 저녁은 김치전을 부쳐서 막걸리를 한잔 해볼까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레몬이 열리지 않는 레몬 트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