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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조와 덕이 Mar 30. 2024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퇴근시간을 지나 후문으로 나갔었다. 퇴직하고 더 바쁘게 사시는 선배 언니가 오기로 해서였다. 저녁 무렵의 햇살이 제법 길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보통같으면 집으로 달려가기 바쁜 시간이었는데 모처럼의 약속으로 여유가 있었다. 공을 차며 뛰노는 학생들도 돌아보고 저만치 높은 곳에서 이제 막 하얗게 피어오르기 시작한 벚꽃도 눈에 담았다.


정작 주기로 한 책은 차에다 두고 이쁜 선물을 하나 싸들고 갔으니 반가움이 앞선 것이었다. 10여 년은 선배인데 늘 친구처럼 대했으니 혹시나 예의에 어긋나지는 않았을지. 늘 동세대 같이 말이 통했다. 모처럼 만나도 예나 지금이나 할 말이 그렇게나 많았다.


자녀들이 성장하고 낭군님과 두 분이 사시는데 나를 만나 저녁을 먹고 간다 했단다. 그랬더니 답신에 대뜸 "내 밥은 어쩌고" 하더란다.


'아하하하' 우린 마주 보고 웃었다. '아이고 세상에! 잘 갔다 오라던지 재미나게 보내라던지 하다못해 어디서 만나는지 무얼 먹을 건지' 그런 내용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할 말이 없었을까. 자신은 외부에서 저녁을 자주 먹고 온단다. 우리는 이심전심 얼굴에 주름을 잡고 웃었다. 끝도 없는 이야기로 밤을 새울수도 있었지만 그런 가정이 걱정도 되어 손을 잡고 일어섰다. 또 만나자고 하며.




아주 오래전 남강둔치에서 열리던 전시회를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개천예술제 즈음이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다양한 행사가 갖춰지기 전에 야외에서 무슨 작품 전시가 있었다. 오후 시간이었다. 전시물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목에 방명록이 있었고 펜을 들고 뭔가를 쓰고는 말미에 불쑥 이런 글을 덧붙였다. 'ㅇㅇ야! 같이 좀 하고 살자!'라고.


'ㅇㅇ가 누고?' '신랑 아입니까!' '그렇나?' 그러더니 대뜸 자기도 펜을 들더니 한 글자 쓰겠다 했다. 새 종이가 아니라 내 글 옆에다 쓰는 것이었다. 'ㅇㅇ야 니도!'라고.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그래놓고 박장대소했었다.


리는 눈만 보면 마음을 알았다. 아이들 키우랴 살림하랴 직장 다니랴 종종거렸던 시절이다. 집안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같이 좀 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둘다 갖고 있었다. 요즘은 남자도 육아휴직이 가능하고 가사도 같이 하고 산다지만 우리 세대는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약속이 있는 날에는 혼자 잘 챙겨 먹어도 괜스레 미안해진다. 자기들도 그러할까.


내가 좋아하는 잔치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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