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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연락이 없다

by 사과꽃


뭐가 그리 궁금한지 말을 하면서도 연신 들여다보며 남의 첫 문집을 손에서 놓지 않던 분, 그녀를 본 지가 좀 됐다. 연초록 이파리가 아직 짙어지기 전에 너른 강변이 보이는 언덕 위에 앉았었다. 탁 트인 공간은 햇살도 공기도 새 이파리도 반짝반짝했다. 차를 한 잔 놓고 책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어대던 분이다.


POD 출판을 하고 나면 그 경험을 알려주마 했었다. 아흔이 훌쩍 넘은 노모를 지극정성 모시는 그녀는 은퇴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엄마를 소재로 한 글을 모아 그녀 역시 출판한다고 했는데 오늘도 그녀는 작업 중이신지. 직장에서 만난 이들이 가족 같을 때가 있다. 이렇게 정겹고 고마운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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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너네 부모님 산소한번 가보자던 말에 정말 같이 언덕배기 산을 올랐었다. 자기가 준비해 온 소주를 한 잔 올리고 말문을 연 그녀의 첫마디


"안녕하세요! OO언니입니다."


그래놓고 긴 말을 이어갔다. 듣고 계신 부모님이 '자네가 우리 OO 언니라면 내 딸이네' 하지 않았겠나. 한동안 그 인사말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긴 날 동안 이 직장에서 함께 한 추억이 많다. 여럿 모이는 독서모임도 같이 했었고 둘이서만 영어 책을 읽어나가기도 했다. 은퇴하고선 브런치에서 제각기 활동한다.


지리산 아래 지은 전원주택을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는 현직에 있는 사람보다 더 바쁘다. 오늘쯤에는 기다리지 말고 연락해볼까? 아침 호숫가에 피어난 꽃창포를 들여다보는데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살금살금 다가갔음에도 발 밑에 금붕어들이 가득 모여들었다. 모이를 준비하지 못했는데도 어느새 발소리를 들은 것이다. 팔뚝만 한 금붕어들이 무리를 지어 빙글빙글 돌며 뭔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모이 준비 못했는데, 너네들 나에게 낚였어'


일 년에 두어 번 만날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만나면 반가운 그녀처럼 나도 누군가의 언니 동생이라고 소개할 만한 사람이 있는가? 누군가의 기쁨을 내 일처럼 기뻐해주고 있나? 어지간한 친절과 관심으로는 그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그건 그냥 얻으려는 욕심만으로 생기지도 않는다. 진심으로 다가가야 누군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테다.


어느 날엔가 텃밭에서 캐 왔다던 시금치랑 상추를 내밀던 마음이나 가을에 수확한 고구마를 한 박스 건네던 그녀처럼 진심이 전해져야 할 테다. 그럴 경우는 수년간 오롯이 보지 못해도 그저 스스로 모여드는 금붕어처럼 반갑지 않겠나. 나에게 그런 사람이 있는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있는가? 돌아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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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이지 않지만 검은색 붕어들이 더 많이 있는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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