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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의 도피

by 사과꽃


어지간한 정이나 신뢰가 아니면 초보자의 글을 읽어 주는 건 쉽지 않다. 하물며 개인의 신변잡기 단편적인 이야기라면 더하다. 시간 내서 읽을 만한 내용인지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관심도 있어야 한다. 공감 재미 의미까지 주는 내용이면 읽는 사람은 당연히 는다. 그러니 쓴 글 봐주지 않는다고 서운할 건 없다.


그리 생각하는 데도 근자에 들어 글 쓰기가 저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가? 새해에는 많이 읽자고 목표를 정했다. 하나 더 보태서 혹여 쓰게 되더라도 긍정의 글 희망의 글을 써야지 하는 다짐도 한다. 어디선가 보아서다. '글은 결국 사람을 살게 하고 살리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에게 그리되면 좋을 테다.


창피해졌다. 내 글에 덕담을 쏟아붓던 지인도 사실은 빈 말이었음을 느껴서다. 자매도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더 창피해져서 연도말부터 잡히는 대로 읽고 있다. 읽으면서 생각을 하고 싶었는지, 책 속으로 숨었는지,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별을 스치는 바람'(2012, 은행나무) 이정명 장편소설 서두에 '문학은 영혼을 살리는 거'라는 말이 있었다. 별 바람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시인이 있었지만 윤동주를 그렸을지는 몰랐다. 관심 있고 궁금해하던 내용은 이렇게 언제든 만나지나 보다. 천재 시인 그를 소설을 통하여 보며 시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생체실험실에서 일제에 의해 바닷물을 주입당하며 실험 대상이 되어 죽어간 사실바탕의 소설을 이제야 읽었다.


해 넘어가기 전에 보았던 '덕혜옹주'(2009, 권비영, 다산책방)도 일제의 만행으로 한 생을 유린당한 조선의 마지막 황녀 이야기였다. 일본땅에 인질이 되고 강제 결혼을 하게 된다. 식민지 국민으로서 당하는 수모를 처절하게 고발한다. 황녀로서 너무나 여리고 모진데 없는 성격으로 그려져서 조금 아쉬웠다. 황녀였는데 특별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시각으로 흐르면 곤란하다. 특권층이었기에 그를 통해서 나라를 잃게 된 배경으로 집권 권력들의 반성을 불러내는 내용이 좀 있었으면 싶었다.


어쩌다 일본과 연계된 책을 이어서 보게 됐다. 배우 차인표의 장편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2021. 해결책)이다. 일제가 저지른 만행 위안부 피해자를 보고 착안했다고 한다. 공인으로서 누군가는 저렇게 묻힌 약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알려야지 않을까 고민했다는 저자의 말이 다가왔다. 부러울 것 없이 화려한 조명을 받는 배우임에도 공인으로서 역할을 생각했다니 멋진 사람이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마지막 부분을 넘겼을 때 종이에 한 줄 적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버림받은 거였구나! 조선의 청년들, 조선의 여성들이.' 남 탓 하기 전에 내 나라 내 집 보완과 반성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적은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있는 이기심이다. '책으로의 도피'는 작금의 현실과 만연한 불합리에 대한 질문을 뭉치는 일이고 해결책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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