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의 '떠도는 땅'
2020년에 발간된 책인 줄만 알았다. 격월간 문학잡지 Axt에 연재했던 소설을 2년 6개월 동안 다듬어 내놓았단다. 이상문학상부터 국내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김숨의 장편소설이다. '떠도는 땅'이 뭘까 궁금했는데 내용을 따라가며 알게 됐다. 떠도는 민족을 의미했다. 우리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내용 중에 누군가가 이야기한다. 자기들의 존재조차 흩어져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소련의 극동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17만 명이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사건을 소재로 했다. 구한말 전후, 신분제에 억눌리고 굶주림과 경제적 착취, 일제 만행에 살 수 없었던 이들이 씨 뿌려 거둬 먹을 수 있는 한 평의 땅을 그리며 러시아로 이주했다. 약소국의 민족이 받는 서러움이 처음부터 끝까지 통증처럼 이어진다. 그들을 보면서 어떻게 이어온 역사인데, 어떻게 이룬 독립인데, 어떻게 다진 민주주의인데, 그런 생각을 했다.
아픈 손목을 눌러가며 통증을 감내하며 읽었다. 주고받는 말들이 영락없이 우리 민족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소설은 이렇게 또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전해주며 그들을 되살려준다. 핍박받았던 역사와 선대들을 기억하며 다시 주위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짐승이나 실어 나르던 화물칸에 사람들을 실어서 강제 이주 시켰다. 영하 30도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 속에서 나누는 대화들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현악기처럼 아슴아슴 통증을 건드렸다. 평범한 대화 속에서 전해지는 고뇌와 깊이도 배움이었다.
'새는 꿀을 먹고 노래를 부르는데 인간은 꿀을 먹고 저주를 퍼붓는다네'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는 건 깨끗한데 입에서 나오는 건 더럽구나!'
'새들은 죽을 때 슬피 울고 사람은 죽을 때 착한 말을 한다지요'
작가에게 고마움이 드는 건 왜일까? 소설로 승화시켜 전해준 이야기에 대한 감사인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고 넘어갈 뻔했던, 넘어가고 있는 사실에 대한 기록이 고마운 건지, 그 둘 다 일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읽고 그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 역사를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