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먼저 온 미래'가 궁금했다

'먼저 온 미래'(2025. 6. 장강명, 동아시아)를 읽고

by 사과꽃


소설가가 쓴 인공지능(AI) 이야기다. 한국 프로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 딥 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AI 알파고의 대결을 보고 프로 바둑기사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전이 달 착륙에 비교될 사건으로 꼽힌다고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이야기를 펼쳐가며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소설가답게 문학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보급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간적 가치를 무너뜨리는데 대단한 성능의 AI가 필요하지도 않다.'라는 말은 글 쓰는 사람을 더 궁금하게 했다.


총 10개의 장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초반에는 의외로 바둑 이야기 반복이다. 수 명의 프로기사들과의 인터뷰 내용이 반복되어 약간 지루할 정도인데 바둑계를 휩쓴 AI의 충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케 한다. 이세돌이 은퇴할 정도였으니 더 말할 게 있을까. 수많은 바둑기사들이 예술이 끝났다고 인간적인 면이 끝났다고 낙담할 때 바둑을 즐기는 대중들은 바둑 AI의 출현을 반겼다. 프로 바둑기사 중에도 반기는 이가 있었다.


천재성을 가진 아이가 5~6세부터 기원에 들어가서 배우던 바둑을 이제는 누구나 인터넷을 통하여 배우고 접할 수 있어서 모두의 실력을 상향 평준화했단다. AI가 어떤 업계에 도입되면 그 내부에서 옹호하는 집단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문학계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저자가 소설가인지라 '예술 창작 AI'가 개발될 수 있음을, 그리하여 문학 장르 자체가 점수화 될 수 있다는 말에 덧붙인다. '문학이 인공지능으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훼손되거나 변질될 수 있다.'


책의 백미는 중후반이다. '한 세대 뒤면 사람들의 현실 인식이 AI와 단단히 결합되어 있으리라'라는 말, '개인의 창의성, 고유성 등이 부서지거나 왜곡되거나 균열이 나 있을 것이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인간 전문가나 소설가의 지식은 쉽게 복사되지 않고 희소성이 있다고, 그건 그들이 지닌 자기 효능감, 자부심, 자존감의 근원이 되는 안 묵지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다. AI의 타격을 받을 때 정상급 기사, 소설가의 수입은 타격이 적으나 나머지 절대다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새로운 가치원천을 찾아내지 못하면 인공지능에 기반한 사회는 거대한 죽음의 집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내놨다.



바둑 AI가 프로기사들에게는 타격을 줬으나 동호인의 즐거움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AI의 등장으로 바둑계는 전보다 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고, AI가 인간보다 더 잘할 수 있다면 그 일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 바뀌며 재미도 바뀔 것이라 했다. 의미를 가진 재미를 이야기하다가 재미보다 더 큰 개념인 가치를 말하면서 저자는 인간의 우월 욕구가 같은 인간을 상대로만 발휘된다고 굴욕감, 질투심, 승부욕은 다른 사람이 있어야 성립한다는 말을 했다.


영화 알파고는 인간 서사이지 인공지능의 서사가 아니라고 스포츠는 아주 훌륭한 서사의 재료라고 인간기사가 바둑에 기대하는 것은 절대적인 탁월함이 아닌 시합을 통해 만들어 내는 서사라고 했다. 스토리 있는 바둑을 사람들은 좋아한다는 것이다. 뭔가 가슴이 찡해지는 부분이었다. 여기서 저자는 말한다. 문학도 탁월함보다 스타성, 개성이 뒷받침되는 게 좋다고. 참여하는 개인의 노력하는 방향이 탁월함이 아니라 스토리에 공을 들여야 한단다. 글쓰기도 컨셉이 필요하고 색깔이 있어야 하고 디자인부터 SNS까지 별 걸 다 해야 한다는 예를 들었지만, 읽는 사람은 또 다른 유추가 됐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탁월함보다 제 각각의 서사가 빛을 발하는 거니까 부지런히 쓰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변잡기처럼 보일지 몰라도 저만의 스토리가 서사 아니겠나. 그러니 에세이라고 가벼이 대할 게 아니라 일단 열심히 쓰면 된다는 위안도 됐다. 후반부로 가면 더 재미있다. 구글, 애플, 메타 같은 빅테크 기업의 횡포 아닌 횡포를 가늠할 수 있고 드디어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이 나온다. 1748년 몽테스키웨가 '법의 정신'에서 말한 3권 분립이 300년도 안되어서 민주주의의 원칙이 되고 상식이 됐다고.


그러니, 가치의 근원에 대한 문제, 기술을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고. 어쩌면 절절한 외침, 바람, 동세대 글 쓰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는 요청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인문학판 맨해튼 프로젝트를 벌여야 한다'라고 했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소개했다. 좋은 상상을 하는 것,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렇게 미래를 바꾸는 것 이란다. 어쩌면 안쓰럽기도 한 저자의 마지막 말은 '아직까지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고 우리 영혼의 선장'이라는 말이다.



책은 읽는 사람의 그릇만큼 메시지를 준다. 보는 시각에 따라 꽂히는 부분도 다르고 읽히는 범주도 다르다. 어쩌면 나의 안경색깔만큼만 따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많이 놓쳤을 것이라는 변명이다. 다 전하지 못한 멋진 내용들을 책에서 직접 만나보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