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자 갑니다! 받으세요!"
S자로 곡선 이음새가 선명한 하얀 배구공을 왼손에 올려놓고 파란 하늘 위로 던져 올린다. 상대 코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넘긴다고 커다랗게 엄포를 놓자마자 떨어지는 공을 오른 손목으로 쳐 올렸다.
"우와! 나이스 서브!"
구경하고 선 사람들이 손뼉을 짝짝 친다. 얼얼한 손목이 풀리기도 전에 날아간 공을 저쪽에서 야무지게 받아 올린다. 유치원 선생님이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공을 쳐내는 모습이 평소의 일 습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모두들 배구만 하고 살았나? 아픈 손을 만지고 있는 짧은 순간에 벌써 공이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저절로 입이 벌어지는데 순식간에 또 공이 이쪽으로 날아온다. 머리에 정통으로 맞을 것 같다.
'엄마야!' 옆으로 줄행랑을 치고 만다. 나이스 서브가 무색하다. 주먹으로 쳐내야 할지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손을 모아 위로 쳐 올려야 할지 판단을 놓쳤다. 그 찰나의 순간에 그만 몸을 피한 것이다. 양쪽에 늘어선 구경꾼들이 배를 잡고 웃는다. 자세히 보니 매번 야무지게 서브만 넣고 제대로 공을 받아치는 법이 없다. 공이 올 때마다 달아나고 있으니 하여 그날 얻은 별명이 서브만 잘하는 '서브의 여왕'이다.
매주 한 번 일과 후 직원 체육을 했다. 교사들과 행정실 직원들이 어울리는데 행정실 직원이래야 젊은 과장과 나이 드신 어른 두 분이니 매번 참석하는 자는 젊은 과장이다. 여선생님의 비율이 높아 배구 선수도 거의 여선생님이다. 어울려 제법 배구 게임을 했는데도 실력이 늘지 못한 건 아마도 1년 여를 채우지 못하고 그 학교를 떠났기 때문이리라.
한바탕 배구 게임을 하고 나면 간식 시간이 기다린다. 커다란 수박이 단골로 올라왔는데 작은 체구의 유치원 선생님을 밀어내고 씻어서 자르고 차리는 일은 덩치 큰 서무과장이 도맡았다. 커다란 테이블에 양쪽으로 간식들을 펼쳐놓고 교장 교감 선생님과 배구공을 때리지 않은 분들도 다 모였다. 지대가 높았던 학교 운동장에서 배구공을 던져 올리면 그때도 하늘이 참 파랬다.
그 학교를 떠난 뒤에도 간간이 그들과 모임을 했는데 후임 서무책임자도 배구를 같이 하는지 물은 적 있다. 전임자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발령을 받아서 신통해하던 때였다. 이름은 같은데 직원체육 시간에 전혀 참석을 않는단다. 간식도 먹으러 오지 않아 갖다주고 있다는 푸념을 들었다. 어울려 함께하지 못할 때는 누군가 끌어주는 사람도 필요한데 낯을 가린다는 동명의 그 친구가 마음에 걸렸다.
배구를 잘하여 어울린 것도 아니다. 한 조직에는 다양한 구성원이 있고 각자의 위치에서 여력이 남는 자가 돌아보게 되는데, 니 일 내 일을 구분하며 금을 긋기 시작하면 삭막해진다. 어떤 환경에서든 여러 사람이 마음으로 뭉쳐서 어울리게 되면 일도 친분도 자연스레 풀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하루가 모여서 1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한 생이 되었다. 지나온 근무처마다 알게 된 사람들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하늘 높이 던져서 바라볼 것이 꼭 공만이 아니라 간혹은 옹졸해지는 마음이고 서운해지는 마음이다. 남은 손으로 툭 쳐서 부드럽게 날려야 하는 것도 자꾸만 숨고 싶고 줄어드는 자신의 모습이다. 그렇게 멀리 날려버리고 자신감을 회복해야 다음 근무처에서 다음 시즌에서 다시 날개를 달 수 있다.
"자! 다음 사람 들어갑니다!"
"나이스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