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워서 읽은 책 한번 더 베어 먹으면서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
아는 만큼 느끼고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고 여겨질 때가 있었다.
꼭 같은 상황에서도 받아들이고 배우고 감흥하는 것은 제각기 다른 것이다.
꼭 자기만큼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늘 바쁘게 되지 않았을까.
내가 아는 것이 제대로인가. 내가 보는 것이 맞는가. 다른 사람의 시각은 어떠할까.
그런 성향이어서 인지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말'(인생의 역사, 신형철)에 감동했다.
밑줄 긋는 부분은 그래서인가. 나에게 꽂히는 부분만이다.
어쩌면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나 자성이 되는 말에 지남철 같이 마음이 가서 붙은 것일 테다.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비난하지 마시라'
'지금 느린 자는
훗날 빠른 자이리'
'이제 학생들은 분노하고 나는 속으로 부끄러워하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기성세대가 되었다'
'나를 태우는 불을 끄기 위해 나는 타오르는 책들을 뒤적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인생이라는 불에 대해 문학은 맞불'
-인생의 역사, 2022. 신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