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사' - 신형철 시화 -
한 손에 쏙 들어왔다. 가방에 넣어 다니기 좋고 어디서든 펼치기 좋으라는 배려를 담은 것인가? 잡은 책의 표지는 더 심플했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책을 덮고 그 감동을 음미했다. 좋아하는 초콜릿을 가방에 넣어 다니며 조금씩 베어 먹듯이 소중히 읽어가고 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으로 나를 홀렸던 작가 신형철 님의 최근 작품이다. 2016년 한 신문에 올렸던 시화 25편을 묶었다고 했다. 모임에서 어느 이쁜 사람이 추천한 책 '인생의 역사'다.
한달음에 달려가서 찾아보기 전에는 이렇게 깜찍한 모습일 줄 몰랐다. 절반을 넘기고 있는데 이 이야기가 끝나 버리면 어떡하나 싶다. '인생의 역사' , 인생 그 자체의 역사는 '시'라고 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세 번째 나에게 권해졌을 때 그 세 번째에는 구입하여 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그리고 시집을 옆에 놓고 하루에 한 편씩은 읽어보기로 작심했었다. 시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 준 책이다. 그 몇 대목을 옮겨본다.
좋아한다(like)가 사랑한다(love)보다 세 배 더 많다고 한다.
'음악을 좋아한다'라고 하지만,
(시는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시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두 배 더 많다고 한다.(p262)
시를 왜 읽어야 한단 말인가?
왜냐하면 삶이란 의미를 찾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그 순간에만 겨우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것이니까. 이 대답은 아직 충분히 강하지 못하여 그래서 더 많은 시를 더 필사적으로 읽지 않으면 안 된다. (p265)
like와 with는 우리말로 '같이'이다.
뭐든 당신과 '같이'하면 결국엔 당신 '같이' 된다는 뜻일까.
늘 시와 같이 살면 시와 같은 삶이 될까, 안될까.
우리는 영원히 시를 포기하지 말기(p322)
'인생의 역사'에서 뽑아온 귀한 말을 따라 적어 본다.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 견뎌낸 사람, 그런 사람만이 밟을 수 있는 장소가 시의 영토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p52)
역시 이어지는 말이다.
구조가 폭력적일 때 그 구조의 온순한 구성원으로 살아온 사람은 축소해 말해도 결국 '구조적 가해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p61)
황폐한 성가대석과 저무는 해와 하얀 잿더미들을 보게 될 날이 그리 천천히 오지는 않을 것임을 알아차린 시인도 내 안에 있다. 나는 내 안의 청년에게 이 시를 읽어주면서 삶을 더 사랑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 청년은 고집이 세고 기억력도 나쁘다
불완전한 인간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그를 '살며시 어루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외로움이 두렵지는 않아요
내 외로움은 가볍습니다.
육체를 지탱하는 것이 밥이라면 정신을 북돋우는 것은 인정이다.
나는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욕망할(인정할) 만한 사람인가?
외로움과 달리 고독은 나를 둘로 나누어 대화하게 만든다는 것
황동규 시인은 외로움이 더는 외로움이 아니게 되는 순간을 가장 섬세하게 포착하는 시인 중 하나다.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
추억이란 애써 올라가 미처 내려오지 못하고 꼿꼿해진 생각이 아닐까.
추억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애착이 빚은 일종의 정지 상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한용운)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기루어서 '인생의 역사' 책을 엮는다라고 밝힌 저자의 말이 따뜻했다. 시를 아끼고 전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말로 글로 너무 잘 전해져 온다.
지식인들이 사회 부조리에 맞서고 대중의 아픔을 함께 했던 시절에는 문인과 철학자의 경계가 없었다고 적은 글이 있었다.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시를 통하여 시대를 아우르며 고민하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져서 더 감동스럽게 책장을 넘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