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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울 Aug 29. 2022

비맛 땅맛

해피트리의 환생 - 은퇴일기 11

 은퇴 후 제주에서 등산은 물론 승마와 연주생활을 즐기며 은퇴의 정석을 보여주던 언니가 오랜만에 육지로 와 만나는데 집에서 키우던 다육이를 선물로 갖고 나왔다. 마침 소나기가 장하게 오니 밖에 내놓고 비를 맞히자며 집에서는 일부러 비오는 날 다육이들을 갖고 내려와 흠뻑 물을 준다고 하였다.

 

 바로 그 언니가 언젠가 선물해준 해피트리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잘 자라다가도 겨울을 나며 냉해나 동해를 입어 잎이 다 떨어져 죽었나 싶다가도 여린 잎이 다시 나면 환호하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제법 꼴을 갖춰 해피한 이파리깨나 달고 있었는데 이삿짐에서 그 화분이 빠진 것을 알고 놀라 물었더니 버리는 건 줄 알고 화분과 분리해서 나무를 버렸다는 것이다. 제일 큰 화분이라 무거워서 빼고 싶었던 심정은 이해하나 괘씸하기도 하고 오랜 세월 묵은 해피트리와의 정리도 있어 마침 관리실에 갈 일이 있으니 장소를 알려주면 찾아오겠노라 했더니 아무도 못찾는 곳에 버려서 본인이 찾아야 한다며 한참 후에 비닐에 둘둘 말린 나무를 내미는 것이었다. 이사를 인근 마을로 갔기에 망정이지 멀리 갔으면 다시는 만나지 못했을 운명이었다.


 혼쭐이 난 탓인지 새집에 와서는 시들배들 말라 목대만 남아 하얀 거품을 내밀기에 명이 다한 줄 알고 내다버릴 심산으로 시골 친정집으로 가져갔다. 어디에 버릴까 하다가 어쩐지 한 줄 미련이 남아 어머니가 가꾸는 화단에 심어보자 하고 부지깽이 같이 볼품없는 줄기만 남은 걸 거칠게 꽂아 두고 잊고 있었다. 봄이 지나고 으아리 꽃이 한창이던 6월 어느 날 그 옆에 너무나 맨질맨질한 잎이 무성하게 나있는 해피트리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버렸으면 어쩔뻔 했을까 하는 마음으로 경이롭게 바라보노라니 비맛과 바람맛 땅맛을 만끽하며 본능대로 볕속에 섞여 터져오르는 그야말로 눈부신 환생이었다.


 겨울이 오면 저 화사한 본능으로 뻗어나간 뿌리를 쳐내 화분에 가둬 다시 실내로 옮겨야 할 생각에 걱정이 앞서는 동안 해피트리가 파격적으로 죽음에서 자신을 살려내며 보여준 '해피'한 생의 조건을 생각해 본다. 생애 처음으로 야생의 비맛과 바람맛과 볕맛과 땅맛을 보며 흡족히 뿜어 올린 자신도 미처 몰랐던 무성한 새잎과 줄기의 눈부신 향연...


 장마 지나고 더 무성하게 퍼지는 왕성한 생명력을 보니 올겨울 다시 화분에 갇히는 신세로 전락할 해피트리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오그라드는 한숨처럼 창문 바람결에 자신의 사연을 포르르 포르르 풀어내겠지. 비맛과 땅맛을 알아버린 존재로서 땅 속에 잠겼던 꿈만 같던 기억을 뿌리로 잡아당기며 무엇을 견디어야 하는 것일지, 어떤 가지를 버려야 시들지 않는 뿌리를 지켜낼 것인지 문득 쓸쓸한 삶의 은유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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