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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울 Apr 04. 2024

프로크리에이트 예찬, 라인 드로잉 1

비양도 1

사는 게 재미없다고 한 내 앞에 작은 아들녀석이 자기 아이패드를 터억 갖다 놓더니 마음대로 그려보란다.


프로크리에이트라는 유료 앱에는 신천지가 숨겨져 있었다. 다양한 그림 붓들과 그 효과가 어찌나 다양한지 계속해서 놀라면서 마음대로 그렸다 지웠다를 쉽게 하니 그림에 생짜배기인 내게 안성맞춤이다. 레이어를 쌓아가며 위 아래 배치에 신경을 쓰는 데 어색하고 정신이 없어 자꾸 실수를 되풀이 한다. 

 

 저 첫그림은 나를 비양도로 데려갔던 친구 블로그의 사진에서 정말 거칠게 라인을 따서 그때 보았던 협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비양도의 느낌만으로 마구 문지른 건데 제법 비양비양해서 버리지 않고 첫작품으로 건져두었다. 처음 화장을 하는 여자의 붓질처럼 어설퍼도 그게 그리울 날을 위해서 보존키로 한다. 새로운 재미의 문을 여는 교두보로 삼아 기념하자! 무엇이든 진득하게 해내지 못하고 그만 두기 바쁜 내가 이런 신문물을 사용해 그림에 대해 평생 열등히 억눌린 바윗돌을 치우고 팔을 걷어부친 게 어디냐, 야메로 야매(野昧 촌스럽고 어리석음)스런 그림을 그려보자, 그림축에 끼는 건지도 모르지만 일단 나를 끌어내고 나만 만족시키면 된다. 게을러서 어디 가 배우는 거 숙제하는 거 못하는 내게는 완전 딱이다. 

  

 게다가 노션 독서 메모장도 공유할 수 있으니 평생 독서노트로 너절하게 써 놓은 저 구질구질한 공책들 더 늘이지 말고 이제 이 모든 것을 아이패드에 깔쌈하게 담아 죽을 때 이 패드 하나 껴안고 얄팍하게 죽으리라. 

 

 아들 명의의 아이패드를 돌려주고 당당히 내 것을 살 때까지는 셋방살이 신세지만 좋은 세상 맛 좀 더 보꾸마, 이리 길어질 줄 모르고 빌려준 아들은 기약없이 한참 더 기다리그라마


"인간은 이상하고 인생은 흥미롭다. 아직도 무지하고 미숙하여 나는 다급하다" -신형철


그의 저서 '인생의 역사'에서 발견한 구절이다. 자주 그렇지만 그의 문장은 어쩜 이리 내 마음을 적확하게 표현하는지 전율이 인다.  남들은 퇴직하고 뭐하냐, 안 심심하냐 묻지만 나는 '무지하고 미숙하여' 남은 시간이 '다급하다.'


야메 그림의 부족함을 내 늙어가는 날에 꽂히는 빛살 같은 시나 문장들을 뒤져 넣고 다시 볼 예정이다. 내가 나에게 기쁨 주고 사랑 받는 기록으로 남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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