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겨울 밤 0시5분
일 년에 한 두번을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가 있다.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그는 동네 가게들을 그린 아이들 그림으로 엽서를 만들어 선물한다. 어설퍼도 이쁜 그림들인데 너무 유니크하고 심지어 감동적이다. 한 학년 전체 아이들의 자화상을 축제기간에 전시하였다고도 한다. 제 얼굴을 찾아내는 아이들의 눈빛이 그려진다. 나도 이런 선생님에게 미술을 배웠더라면 그림에 대해 이렇게 쪼그라든 마음은 아니었을텐데라고 칭찬을 보탠다. 내 그림을 휙 던져 교실 바닥에 슬라이딩하는 장면과 그걸 주워오는 어린 날의 내 모습, 검사 받으러 늘어선 친구들이 그걸 구경하는 모습까지 한 앵글 안에 잡혀 각인돼있다.
아이패드 그림 얘기를 꺼내니 어설픔을 벗어나려 애쓰지 마라, 어설픔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라는 얘기를 해준다. 어설픔이 개성으로 자라나기도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오직 자기만족!
그 친구가 고르고 예약해 둔 맛깔스러운 집에서 점심을 먹고 찻집 발굴과 순례의 명인인 그가 추천하는 곳으로 향했다. 예전에 원흥동 손탁 커피집에 데려간 적이 있었는데 오늘도 조용하고 한적한 교외로 가보자하고 달린 곳이 바로 내가 자주 드나드는 친정집에서 5분정도 걸리는 월롱의 손탁 커핏집이었다. 아이고 놀라라, 신기한 인연이로고, 옛날 벽돌공장의 익숙한 굴뚝이 높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옆의 대형 카페에는 몇 번 가본 적 있는데 이런 감성 공간이 숨어 있는 줄 몰랐다. 드립커피가 맛있는 집이라는데 해질녘 석양의 조도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도 그만이었다. 방구석에만 있지 말고 일상에 치여 종종대지만 말고 일부러 가끔씩 이런 환기의 시간을 마련해야지.
소산 박대성 화백이 그린 소산비경 엽서를 가져 와 가나아트센터 전시에서 받은 감동을 전하며 한 잎 한 잎을 그려낸 열정과 화풍에 대해서도 알려 주었다. 해방둥이로 태어나 전쟁통에 모친을 여의고 빨치산에게 아버지와 자신의 한쪽 팔을 잃은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낸 화백은 제도권에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채 자신만의 현대 수묵화 화풍을 이뤄냈다고 한다. 울림이 커서 전시를 다시 보고 싶다고 나와 약속을 잡았는데 코코를 보내며 심란 막심하여 그만 그 약속을 못지키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에 자료를 찾아보니 "남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스스로 자기 세계를 형성해야지요.”라는 작가 인터뷰가 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이런 만남은 석양의 햇빛 한 장처럼 마음을 고양시킨다.
'무언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 곁에서 어둠이나 빛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이 싯구절에 나는 많이 찔린다. 침묵의 공백을 견디지 못하고 섣부르게 이말저말 갖다 붙이거나, 가벼운 희망이나 한 술 더 뜨는 어둠을 억지로 비벼넣는다.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하지 못한다. 간절한 사람 옆에서 아무 말없이 주파수 맞추어 들어주기, 소리 없는 말 그거 한번씩 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