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은 방향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방향을 잃은 게 아니라
흘러갈 통로를 잃은 상태에 가깝다.
말이 되기 전에
막히고,
정리되기 전에
차단된다.
그래서 울분은
누군가를 향하기도 전에
먼저 내려앉을 자리를 찾는다.
방향을 정해달라고가 아니라
막지 말아달라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무언가가 되려고 한다.
버팀목이 되거나,
기둥이 되거나,
답을 가진 사람이 되려고.
하지만 울분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방향이 아니라
방향이 생길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역할을
사람들은 땅이라고 부른다.
땅은 버티는 존재가 아니다.
견디거나 감싸는 역할도 아니다.
땅은 내어주는 존재다.
감정이 흘러와도 막지 않고,
쏟아져도 모양을 요구하지 않는 자리.
울분은
그렇게 공간을 만났을 때
비로소 자기 방향을 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