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시간 이런 생각으로
나를 갉아 먹었다.
내가 더 노력했으면 달라졌을까.
주변이 달랐다면 나는 다른 사람이었을까.
소셜애니멀을 읽으며
그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처음엔
“나는 씨앗을 바꿀 의지가 부족했다”는
자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읽어보니
이 문장이 더 정확해 보였다.
그때의 나는
씨앗을 바꾸는 방법 자체를
몰랐던 아이였다.
아이에게 환경은 선택지가 아니다.
어른의 방식, 비교의 기준,
함께 배우는 사람의 유무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었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토양의 문제에 가까웠다.
시간이 지나
나는 처음으로
환경을 바꾸는 선택을 했다.
일하는 곳을 바꾼 일은
생각보다 큰 영향을 남겼다.
돌아보면
그건 처음으로
내가 땅을 고른 순간이었다.
씨앗을 탓하던 자리에서
땅을 옮긴 자리로
이동한 셈이다.
물론 그 이후의 시간은
쉽지 않았다.
이 환경이 나를 키우는 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환경이 바뀔 때
가장 흔들린다는 것을.
새로운 땅에 옮겨진 뿌리는
처음엔 방향을 잃고
잠시 시들어 보인다.
그 시간을
“나는 안 맞나 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지금 뿌리 내리는 중이구나”라고
바라볼 수도 있다.
나는 오랫동안
내 땅을 태우기도 했고,
부수기도 했고,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켜켜이 쌓였다.
처음의 땅은 척박해서
무엇이든 자라기 어려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척박함을 견뎌낸 것들이
조금씩 땅을 개척해냈다.
힘들었던 만큼
쌓인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축적이
이제야
새로운 뿌리를 받아들일
온도를 만들고 있다는 걸 느낀다.
어쩌면
새로운 것들이 들어오는 시간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쌓여 있던 것들이
서로를 만나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씨앗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땅을 가꾸는 쪽을 택하겠다고
내 안의 씨앗들이 이 땅에 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