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피의자 신문
재호는 어둠을 틈타서 빠르게 프랭크가 있는 집으로 달아났다. 황급하게 집으로 들어오는 재호를 보고 프랭크가 놀라서 물었다.
"헤이, 재호! 무슨 일이야?"
"프랭크형! 나 어떡해? 내 내가 어쩌다가. 미안해요, 형! 진짜 미안해요."
프랭크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안절부절 못하는 재호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그의 눈을 보면서 물었다.
"진정해, 재호! 무슨 일인데 그래?"
"형!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어요. 희망원에 있는 제 여자친구를 김승환 과장이 문을 따고 들어와서 그녀의 옷을 찢고 강간하려고 하자 제가 그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머리를 잡고 벽에 밀쳤는데 하필 그자리에 옷걸이용으로 박아둔 긴 못이 있었어요."
"이봐, 재호! 내가 있는 한 네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거야. 여자친구는 네게 뭐라고 했어?"
"오늘밤 저는 그곳에 간 적도 없는 거고, 자기가 성폭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밀쳐서 그렇게 된 거라고 말할 거래요. 그러면서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받다보면 몇일 버티지 못할거래요. 그 사이 저보고 해외로 도망가래요."
프랭크는 사흘 안에 재호를 해외로 탈출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는 루트로 빠르게 재호의 여권을 위조하고 경찰이 자신의 집까지 추적해 들어올 경우에 대비해서 재호를 은밀하게 해외로 빼돌릴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재호! 오늘 이후로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마."
"알겠어요."
"널 거기로 보내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곳밖에 떠오르지 않네."
"어딘데요?"
"골든 트라이앵글. 태국 북부와 라오스 북서부, 그리고 미얀마의 동부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인데, 태국의 치앙센을 지나서 미얀마의 샨족이 있는 호몽계곡으로 널 보내려고 해. 네겐 세상의 어두운 면을 모른 채 살아가게 하고 싶었는데, 운명이 널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구나."
"어디든 형이 시킨대로 가서 살도록 할게요."
"그래, 네가 거기에 도착하면 내가 조만간 찾아가도록 할게. 그때가지만 잘 버티고 살아있도록 해."
"형 염치없는 줄 알지만, 한가지만 더 부탁할게요. 제가 떠난 뒤에 소연이 좀 지켜봐주세요. 경찰들이나 다른 나쁜 애들한테 시달리지 않도록요."
"그래, 알았어."
재호가 떠나고 난 뒤 소연은 바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재호에게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아침까지 기다렸다. 죽은 김승환 과장의 시체와 그의 숨골에서부터 흘러내린 피가 벽을 타고 방바닥까지 적신 기괴하고 오싹한 상황을 뜬눈으로 지켜보며 새벽 여명이 밝아오기를 기다렸다. 공포로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지만, 시체를 등지고 있으면 마치 귀신이 뒤에서 자신을 덮칠 것 같아서 오히려 똑바로 시체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밤을 지새웠다. 시체를 응시하며 아침을 기다리는 것은 18세 소녀가 맨정신으로 감당하기에 너무 벅차서 마치 그 시간이 소연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다크서클이 짙게 물든 퀭한 눈과 뺨이 움푹 들어간 듯 초췌한 몰골로 소연은 아침 햇살이 창가를 비추자 방문을 열고 이연옥 원장을 찾아갔다.
소연은 간밤에 있었던 일을 재호만 쏙 뺀 채 이연옥 원장에게 말해주었다. 소연을 안아주며 그녀를 진정시킨 후 이연옥 원장은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얼마 후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 2대와 앰뷸런스 1대가 희망원으로 진입했고, 형사들은 소연의 방에서 김승환 과장의 시신 상태를 확인하고, 소연에게서 1차적인 진술을 받아냈다. 출동한 형사 중 1명이 소연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려고 하자 이연옥 원장이 나섰다.
"정당방위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 사고인데, 꼭 수갑을 채워서 연행해야 하는 건가요?"
"살인사건이라 사안이 워낙 중대합니다. 정당방위의 성립여부를 저희도 잘 따져보겠지만, 결국 검찰청에서 결정할 일로 보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일단은 수갑을 채워서 연행할 수 밖에 없으니, 양해바랍니다."
이연옥 원장은 소연을 꼭 끌어안아주며 그녀의 눈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위로해주었다.
"소연아! 너무 걱정하지 마. 이 엄마가 변호사를 사서라도 널 꺼내줄게.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잘 참도록 해."
"네, 엄마! 엄마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몇일만 기다려주세요."
소연은 거의 탈진하기 직전의 상태여서 뭐라고 길게 대답할 힘도 없었지만, 힘없는 목소리로 오히려 이연옥 원장을 안심시켰다.
멀어지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연은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경찰서의 한 조사실에서 2명의 형사들과 마주 앉은 소연은 재호의 존재를 쏙 뺀 채 간밤의 일을 차분히 진술했다. 소연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처럼 굴던 형사 중 1명인 배일도 형사는 갑자기 손을 들더니 소연의 진술을 중단시켰다.
"그러니까 니말은 김승환이 니 상의 찢고 니 가슴을 강하게 움켜쥐면서 강제로 너를 덮쳐서 그것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기제? 그란데, 지금까지는 니말을 입증할 건 순 니가 한 말뿐이고, 그걸 증명할 길이 없다 아이가. 뭐 가슴이라도 보여주면서 말해야 증명이 될 거 아니겠나?"
"네? 그말은 지금 저한테 가슴을 보여..."
배일도 형사의 말에 수치심을 느낀 소연은 얼굴이 발개지며 뒷말을 잇지 못했다.
"와 몬하겠나? 그라모 니 말에 신빙성이 없다 아이가."
"신빙성이고 뭐고 있는 저는 있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깁니다."
"허 참! 니 지금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켔나?"
"예, 맞심니더."
배일도 형사의 옆에서 소연의 진술을 타이핑하던 정한길 형사가 코웃음을 치면서 소연에게 김승환 과장의 사진 몇장을 던져주며 소연이 우려하던 부분을 집요하게 따져 물었다.
"여 함 봐라! 이 사진에 보면 김승환 과장의 얼굴이 완전히 형체를 몬알아볼 정도로 얻어 맞아서 부어 있다 아이가? 그리고 이 사진은 어떻노? 온몸에 시퍼렇게 얻어맞아서 멍든 자국 보이제? 이것도 니가 했다고 할끼가?"
"네, 맞심니더."
"니가 무슨 수로? 니가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무슨 수로 이렇게 덩치가 큰 남자를 힘으로 제압해서 이 정도 부상을 입혔다는 긴데?"
"변호사 불러주이소. 더 이상은 변호사 없이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무슨 변호사? 니 돈 많나? 누가 변호사는 아무나 부를 수 있다고 카더나?"
"저희 엄마가 변호사 선임해준다는 말 못들었어예?"
소연은 형사 두명의 다그침에 무섭고 주눅이 들었지만, 재호를 생각해서 정신줄을 겨우 붙들어서 대꾸를 했다.
"천애고아인 니가 무슨 엄마가 있노? 아! 희망원 원장 말하는 건 갑네. 맞제?"
"저한텐 엄마라예. 아까 엄마라고 하는 거 못들었심니꺼?"
"뭐 그렇다 치자. 그란데, 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겁도 없이 까부노?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큰소리 땅땅 치던 인간들도 일단 여기 들어와서 우리들 손맛 좀 보고나면 두손 두발 들고 마 고마 순한 양으로 변한다 아이가. 그 다음은 니 말 안해도 짐작이 되제? 고마 우리가 불러주는 대로 진술하고 서명날인 할 테니까 제발 살려만 달라고 싹싹 빌다가 결국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감방에 간다 이말이다."
"지는 분명히 변호사 불러달라고 했심니더. 저를 때려서 고문하든 물고문을 하든 마음대로 하이소. 나중에 법원에서 다 문제 삼을 끼라예."
"하! 가시나 성깔 있네? 그래 마 좋다. 좀 거칠기는 해도 이건 어디까지나 증거수집 차원에서 하는 기니까, 우선 니 그 상의부터 벗어봐라. 니가 김승환 과장한테 정말로 가슴을 움켜 잡혔는지 사진으로 찍어서 증거로 보존해둬야 니한테도 유리할 거 아이가?"
"여긴 여자 형사님은 없심니꺼?"
"와 부끄럽나? 우리 경찰서에는 안타깝게도 여자 형사가 없다 아이가. 그라고 설령 아줌마 형사가 있다고 해도 어차피 우리가 그 사진 다 보게 되있다 아이가. 뭐 할라꼬 그런 복잡한 절차를 밟노? 그냥 마 쉽게 쉽게 가자 마."
소연이 침묵으로 대답을 거부하자, 배일도 형사와 정한길 형사는 둘이서 몇마디 말을 주고 받더니 첫 진술은 일단 그것으로 끝내고 소연을 유치장에 집어넣었다. 소연을 비록 남자 범죄자들과는 분리해서 가뒀지만, 철장 하나 사이로 바로 옆에 있는 험악한 진짜 남자 범죄자들이 소연을 희롱하며 온갖 수치스러운 성희롱과 언어폭력을 가하고 있었다. 배일도 형사와 정한길 형사는 소연의 진을 빼놓을 요량으로 남성 범죄자들의 성희롱과 언어폭력을 일부러 제지하지 않았다.
소연에게는 저녁도 주지 않은 채 시간은 계속 흘러서 자정 무렵이 되었다. 배일도 형사와 정한길 형사는 그 사이 소연의 주변인물들을 탐문하면서 얻은 정보로 바탕으로 다시 소연을 조사실로 불러서 2차 심문을 하기 시작했다. 의문이 있는 정황들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소연에게 김승환 과장에게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부상을 입혔던 제3의 인물의 이름을 말하도록 추궁했다.
"지는 모릅니다. 제가 그런 거라예. 변호사 불러주이소."
"하! 이 어린 년이 보통 질긴게 아니네! 니 그러다 후회한다 카이. 좋은 말로 할 때, 후딱 이름 대고 여기서 나가야지. 여가 뭐가 좋다고 계속 있으라고 하노? 안 그라나?"
"지는 몰라예."
경찰서에 유치한 이후로 두 형사는 소연에게 아침, 점심, 저녁을 굶긴 채, 자신들은 교대로 잠을 청하면서 소연을 아침까지 한숨도 못 자게 고문하면서 소연을 심문했다.
아침이 되자 이연옥 원장이 변호사를 대동하고서 제황경찰서를 방문했다. 소연의 수척해진 몰골을 보고서 이연옥 원장은 담당 형사들에게 따져 물었다.
"이 아이 밥도 안주고, 잠도 안 재우고 신문한 건가요?"
"어데예? 법치주의 사회에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꺼?"
"엄마! 맞아요. 저 사람들 어제 아침, 점심, 저녁 모두 굶기고, 잠도 안 재우고 저를 심문했어예."
"그게 사람으로서 할 짓입니꺼? 이 아 얼굴 좀 보이소."
"이건 명백히 법으로 금지한 고문입니다. 경찰 서장 나오라고 하세요."
이연옥 원장이 대동한 변호사가 강하게 어필하자, 정한길 형사는 그제서야 소연에게 뭘 먹을 것인지 묻지도 않고서 일신반점에 전화를 걸어서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주었다. 소연이 이연옥 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겨우 요기를 하고 있는 동안, 변호사는 경차서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장님! 더 위로 올라가시는데 자그마한 흠이라도 남겨서 되겠심니꺼?"
"우리 아이들이 진실을 밝히려는 의욕이 넘치다보니 좀 무리한 같은데, 마 너그러이 봐주이소. 우리도 저 여자 애가 죽이지 않았다는 거 암니더. 그란데 지가 죽였다고 고집을 부리니까 좀 심하게 다뤄서라도 실체진실을 밝혀서 빨리 내보래줄라꼬 그란 거 아니겠심니꺼? 그러니까 변호사님도 잘 생각해 보이소. 만 하루만 전마들이 하는 걸 못 본 체 해주시면, 마 그 다음날 저 애는 내보내 주겠심니더. 어떻게 하시겠심니까?"
"뭐 그렇게만 한다면야 제 의뢰인에게도 저한테도 나쁠게 없지 말입니다."
"잘 생각했심니더. 이 업계에 있다보면 형사가 사무장 되고, 또 일거리도 물어오고 뭐 그런 거 아니겠심니꺼?내 무슨 일 생기면 변호사님한테도 적당히 연락가게 하겠심니더."
"아이 뭐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잘 알겠심니더. 마 서장님 뜻대로 하입시더."
변호사 양영태는 경찰서장과의 암묵적 합의 후, 이연옥 원장과 소연에게는 경찰 서장에게 잘 말해서 더이상 힘든 일은 없을 거라고 안심 시켰으나, 실상은 별다른 피해자 보호조치 없이 짐승같은 형사들에게 소연을 맡겨둔 채 자신의 주머니를 불릴 생각에 흐믓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