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가시밭길
"그만했으면 됐다 아이가. 고마 사실대로 불어라. 김승환 과장 누가 죽였노?"
"제가 그랬어예. 형사님이 와 그런 질문을 하는지 내사 마 전혀 모르겠심니더."
조사실에서 소연을 다그치는 배일도 형사의 질문에 피곤해서 자꾸 고개를 위아래로 짷고 있던 소연이 간신히 의식의 끈을 붙잡고 대답했다.
"와 이 가시나 진짜 생고무처럼 질기네. 니 계속 이라모 진짜 후회할끼다."
"진짜 내 딸 같아서 하는 말이니까 잘 들어라. 위에서 널 어떻게 해도 되니까 실토하게만 만들라는 오다가 떨어졌다. 괜히 지하실 내려가서 몹쓸 짓 당하기 전에 할말 있으모 고마 지금 말해라."
"내는 모릅니더."
배일도 형사와 정한길 형사가 소연을 다시 한번 협박했으나,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자 결국 소연을 경찰서 지하실에 있는 고문장소로 데려갔다.
한편, 마음이 불안해서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자, 이연옥 원장은 희망원 출신으로 경찰 치안감까지 오른 남성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성준이가? 나 이연옥 원장인데..."
"아이고 어무이 아닙니꺼?"
"그래, 잘 지내제?"
"네! 지는 마 밥도 잘 묵고 건강하게 잘 지낸다 아입니꺼? 그란데 무슨 일 있습니꺼? 어무이가 이 시간에 저한테 전화를 주신 거 보면 뭐 급한 일 있으신 거 아입니꺼?"
"성준아! 너한테 미안한 말인데, 우리 희망원 아 중에서 한 명이 지금 살인 피의자로 제황경찰서에 긴급체포되갔고 이틀째 조사를 받고 있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불안한 게 잠이 오지 않는다 아이가. 어제는 가를 마 하루종일 굶겼다 카더라. 피골이 상접해서 얼굴이 마 하루 사이에 반쪽이 되갔고..."
이연옥 원장을 말을 하다가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어무이요. 진정하고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심니꺼?"
"미안하다. 성준아!"
"그런 말 하지 마이소, 내사 엄마 아들 아인교?"
"내가 너한테 이라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지금 상황이 너무 불안해서 맴이 안 놓인다 아이가. 제황경찰서에 전화해서 우리 소연이 구속시킬 거 아니면 고마 풀어주라고 말해주면 안되겠나? 어제 경찰서 갔을 때 형사들 말 들어보면, 지들도 소연이가 안 그런 거 안다카더라. 그란데, 진범을 잡겠다고 소연이를 고문할까봐 내사 불안하고 두렵다 아이가."
"어무이요! 알겠심니더. 제가 경찰서장한테 전화해서 당장 풀어주라고 할게예. 48시간 이내 구속영장 신청 안했으면 풀어주는게 맞심니더."
"그라나? 나는 그라모 경찰서에 가서 소연이 데리고 나와야겠다. 너만 믿는데이"
"네, 어무이! 제가 잘 말해놓을게예."
남성준이 경찰서에 전화를 했을 때, 경찰서장은 이미 퇴근해서 황제 룸싸롱에서 아가씨들과 질펀하게 놀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남성준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최대한 빨리 경찰서장 장철환을 찾아서 자신에게 연락하라는 말을 남겼다. 당직 근무중인 박영수 형사가 장철환이 있는 황제 룸싸롱으로 달려가서 이 소식을 전해주었다.
"뭐꼬? 니 지금 내 노는 거 안 보이나? 내가 특별한 일 아니모 찾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서장님요! 그게 치안감님이 전화를 하셔서 지금 당장..."
"뭐? 치안감님이?"
장철환은 술시중을 들던 아가씨를 밀어내고 옷매무새를 다듬더니 황급하게 경찰서로 돌아갔다. 경찰서에 가자마자 치안감이 남긴 번호로 전화를 했다. 남성준의 집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여보세요."
"치안감님! 저 장철환 경찰서장입니다. 제가 치안감님이 찾으신다 케서 집에서 자다가 부리나케 달려나왔다 아임니꺼. 그란데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예?"
"어 너 소연이라꼬 이틀 전에 긴급체포로 데리고 왔다는 아 알제?"
"네, 치안감님! 그란데 가가 와예?"
"영장 청구할 거 아니고, 48시간 지났으모 고마 풀어줘라."
"네, 치안감님! 지금 당장 풀어주겠심니더."
"그래. 내가 똑띠 지켜볼끼다. 고마 끊는다이."
"네, 치안감님! 충성!"
장철환은 보이지도 않는 수화기 너머의 치안감에게 구십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서는 딸깍 소리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오른손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더니, 급하게 배일도 형사와 정한길 형사를 찾았다.
"여봐라. 배일도, 정한길이 어딨노?"
"자하실에 있심니더."
박영수가 형사가 말해주자, 정철환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부리나케 지하실로 달려갔다. 그때 이연옥 원장도 경찰서에 도착해서 소연을 찾아보았지만, 유치장 어디서도 눈에 보이지 않자 박영수 형사에게 물어보았다.
"우리 딸 소연이 어딨는교?"
"그게 말이지예. 서장님이 내려갔으니까 곧 올라올 낍니더."
"내려갔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꺼?"
"그게..."
빅영수 형사는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몰라서 뒷말을 얼버무렸다.
"하 고년 처녀도 아닌 것이 더럽게 앙칼지네."
"마 기대했던 선명한 붉은 피는 못 봤지만, 그래도 마 처녀 만큼이나 좋았다 아이가."
한편 지하실로 내려간 장철환 경찰서장은 두 형사의 대화와 고문실에 의식을 잃고 널브러져 있는 소연의 참담한 광경을 보고서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서장님요! 와 그라십니꺼?"
자신의 바지춤을 올려서 지퍼를 잠그며 대화를 주고 받던 배일도와 정한길이 묻자, 장철환 서장은 자신은 망했다며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렸다.
"야이 문디 자슥들아! 니들 때문에 내 인생이 날아가게 생겼다 아이가."
"서장님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지 지들은 도무지 모르겠심니더. 무슨 일인데예?"
"치안감이 저 아이 구속영장 청구할 거 아니모 풀어주라고 직접 전화하셨다."
"예? 치안감님이요?"
"그래. 그라니까 이번 일은 나는 절대 모르는 기다. 알겠제?"
"그게 무슨 말입니꺼? 서장님이 오다 내려주신 거 아입니꺼?"
짝! 자신의 말에 반문하는 정한길의 뺨을 찰지게 후려치고는 장철환 서장이 서슬 퍼렇게 둘을 협박했다.
"니들 나까지 끌고 들어갈 생각이면 지옥까지 갈 각오해라. 니들 특수강간범으로 옷 벗는 건 물론이고, 감빵에 가게 될끼다. 저 소연이라는 아이가 문제 삼지 않고 이대로 넘어가면 아무 일 없는 기고, 좋은 거 아니겠나? 혹시라도 저 아이가 문제를 삼으면 진실을 밝히려는 의욕이 넘쳐서 니들이 오바한 걸로 하자. 그라모 내 최대한 너희들 감빵에는 안가고 먹고 살 길도 알아봐 줄게. 일단 그렇게 알아라."
배일도 형사와 정한길 형사가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는 동안, 박영수 형사가 내려와 경찰서장에게 이연옥 원장이 소연을 데리러 왔다고 말해주었다.
"어떻게 할끼고? 내가 시킨대로 할 끼제?"
"네, 알겠심니더."
"저 아이 옷매무새 좀 바로 하고 데리고 나가라. 난 여기 있을 테니까 니들이 올라가서 잠을 못자서 이렇게 된 거라고 둘러대라."
배일도, 정한길, 그리고 박영수 형사가 고문실을 나서려고 할 때, 장철환이 그들을 불러 세운 뒤 물어보았다.
"잠깐! 그래서 니들 김승환이를 누가 죽였는지 알아는 냈나?"
"그게 이 가시나가 끝내 불지 않았다 아입니꺼."
"아 이 병신새끼들이 성고문까지 했으면서도 그깟 이름 하나 몬 알아냈단 말이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고마 꺼지라."
한편, 재호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한태석은 소연에게 물어보려고 진해여고 앞에서 소연을 기다렸지만, 그녀마자 보지 못하자,마창진 연합에 속한 진해여고의 짱인 금미옥에게 소연에 대해서 물어봤다.
"어이! 금미옥이! 니 혹시 진해여고의 퀸가 소연이라고 아나?"
"알지. 우리 학교에서 가 모르면 간첩 아이가. 가는 와 그라는데? 생각있나? 내가 자리 한번 마련해줄까?"
"오바하지마라. 가는 내가 아니라 권재호 깔치다. 니도 재호가 누군지 알제?"
"알지. 그란데, 소연이 무슨 살인을 저질러서 경찰서에 연행됐다는 말이 있던데."
"그거 사실이가?"
"우리 반에 경찰서에 일하는 형사 딸내미가 있는데, 갸 아부지가 소연이 아냐고 물어봤다던데."
"어떻게 된 일인데?"
"뭐 소연이가 성폭행 당하다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죽였다 카더라."
"진짜?"
"형사 딸내미가 하는 말이니까 마 안 맞겠나?"
"그라모 소연이 지금 어딨다고 하던데?"
"제황경찰서에 있다 카던데. 와 가볼라꼬?"
"재호 임마가 어딨는지 알아볼라면 가서 물어봐야 안켔나?"
"재호가 등장하니까 그림이 대충 그려지는 것 같은데."
"무슨 그림?"
"니 생각해봐라. 소연이가 아무리 세게 저항했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덩치가 산만한 남자를 그렇게 죽이기가 쉽겠나?"
"그야 모르지."
"그라지 말고 솔직히 함 말해봐라. 니 소연이 봤을 거 아이가. 갸가 덩치가 산만한 사람을 힘으로 저항하다 못해 죽이기까지 한다꼬? 그게 가능하겠나?"
"마 힘들지 싶다. 그래도..."
"그란데, 그 자리에 만약 재호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아이가."
"니 그 짭새 딸에게 재호 이야기는 입도 뻥긋하지 마라. 안 그라모 내가 니 진짜로 가만 안 둘끼다. 알았나?"
"그래. 알았다. 연합의 누가 니 말을 거역하겠노? 걱정마라."
미옥의 추론에 번개에 맞은 듯 쎄한 느낌이 온 한태석은 스프링처럼 튀어서 미친듯이 경찰서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한태석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의 혀는 생명이나 어떤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에도 그리 쉽게 제어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