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임신
소연이 정한길 형사의 등에 업혀서 나오는 것을 본 이연옥 원장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
"지금 어디서 오는 겁니꺼? 야는 왜 당신 등에 업혀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건데예?"
"그게 저희가 사건의 진상을 알아낼 시간이 촉박해서 좀 무리해서 조사하느라 잠을 거의 안 재웠더니 그런 거라예. 너무 걱정 마이소."
그때 한태석이 경찰서 안으로 숨을 헐떡이며 뛰어들어와서는 소연이 정한길의 등에 엎혀 있는 것을 보고 다그쳐 물었다.
"소연아! 이게 무슨 일입니꺼? 야는 와 당신 등에 엎혀 있는 긴데예?"
"당신? 니 지금 당신이라 켔나?"
"예. 그랬심니더. 와예 그라모 안 됩니꺼?"
"니 여가 어딘 줄 알고 그래쌌노?"
"여 경찰서 아입니꺼? 그게 와예?"
"근데 니는 누꼬? 아랑 무슨 관곈데 여서 큰 소리 치는 기고?"
"나는 야랑. 그러니까 야랑 아는 사이라예."
"아는 사이? 남자 친구도 아이고?"
"뭐 꼭 남자친구만 있심니꺼? 그냥 친구도 있는 거지예."
한태석의 말투에서 그가 소연의 남자 친구가 아니고, 진짜 남자 친구가 따로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정한길은 득의양양한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니 지금 뭐하고 있노? 아는 사이라메? 퍼뜩 와서 야 업어라."
"그 전에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은 해줘야 될 거 아입니꺼?"
"우리가 와 니한테 시시콜콜 설명해줘야 하는데? 니 야 남자 친구도 아니라메? 맞다. 야 남자 친구는 어디 가고 니가 대신 온 기고?"
"그건 저도 모릅니더. 저도 그게 궁금하다 아입니꺼?"
대답을 하고 나서 한태석은 아차했다. 자기도 모르게 소연의 남자 친구 재호의 존재를 말해버린 것이었다. 한태석과 정한길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연옥 원장도 크게 놀란 표정이었다. 뭔가 강하게 짚히는 바가 있었지만, 재호도 소연도 모두가 아픈 손가락인지라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놀란 낌새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 야 남자 친구가 따로 있는 거 맞네. 그란데 친구인 니도 가가 어딨는지 모른다는 이 말이제? 니 이름이 뭐꼬?"
"내 이름은 와 묻는교?"
"자그마치 살인 사건 아이가. 진상을 밝히려고 그라는 기제. 니 이름이 뭔지 말 안하면 여서 못 간다. 어떻게 할래? 니 등에 업힌 가 잠을 못 자서 많이 힘들다 아이가."
"한태석입니더."
"한태석? 어디 고등학교 다니노?"
"진해남고 다닙니더."
"몇학년 몇반이고?"
"3학년 2반입니더."
"그래, 알았다. 오늘은 이만 가봐라. 조만간 다시 보게 될 끼다."
"내가 와예?"
"그란게 있다."
정한길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고양이가 쥐를 놀리듯 알듯 모를듯한 말만 하고서 태석이를 보내주려고 했다.
"아제들요! 그란데 우리 아부지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깁니꺼?"
"니네 아부지?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아노? 그래 대단한 사람인갑네? 누꼬?"
"한동준 국회의원입니더. 저를 부를라카모 제 아부지 허락부터 받아야 할 낍니더."
한태석의 말에 정한길과 배일도의 득의양양한 사악한 미소가 순식간에 찬물을 디집어 쓴 듯 똥씹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니 여가 어디라고 거짓말 하노?"
"거짓말예? 우리 집 전화번호 알려줄까예? 삼삼칠에 구오팔팔 입니더. 아부지한테 지금 당장 전화 함 해보이소. 이 밤에 지를 붙잡고 있다고 경찰서에서 전화 오면 기분 째지겠네예? 맞지예? 우리 아부지 성질 잘 아실 텐데 말입니더."
"밤이 늦었다 아이가. 오늘은 고만 가 데리고 돌아가라. 우리가 좀 알아보고 연락하든지 할꾸마."
"야한테 조금이라도 잘못한 거 있으모 내 가만 있지 않을 깁니더."
"그란게 어디겠노? 없다. 그라니까 퍼뜩 데리고 나가라. 가 지금 잠을 못 자서 마이 힘들다 아이가."
한태석은 소연을 업고서 경찰서를 나선 다음 택시를 불러 소연을 뒷자리에 앉힌 다음 이연옥 원장과 함께 해군 진해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로 소연을 옮긴 이들은 얼마 후 담당의사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몸에 여러 군데 저항흔이 있고 옷도 좀 구겨져 있는 거로 보아 아무래도 신체검사를 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보호자분 동의가 필요한데, 우짤 낍니꺼?"
"신체검사라는 게 어디까지 하는 겁니꺼?"
"딱 봐도 몹쓸 짓을 당한 거 같은데, 뭐 민감한 부분까지 다 들여다 봐야지예. 우짤 낍니꺼?"
"해주이소. 억울한 일을 당했으모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예."
"알겠심니더. 그라모 여기 서명날인 하고, 밖에 대기실에서 기다리이소."
한 시간 여가 지나고 담당의사가 이연옥 원장을 불렀다.
"이 아이 성폭행 당했심니더. 혹시나 해서 몸에 남아 있던 정자를 따로 채취해 뒀으니 나중에 필요하면 증거로 쓰이소. 그라고 더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는데, 놀라지 마이소. 이 아이 임신했습니더."
"임신예? 아니 오늘 그런 일이 있었는데, 하루만에 임신여부를 알 수 있는 깁니꺼?"
"누가 그라데예? 하루만이라고? 적어도 임신 2개월 된 것으로 보입니더."
"참말입니꺼? 참말로 2개월 정도 된 겁니꺼?"
"맞심니더. 초음파로 검사한 기라 틀림 없을 깁니다. 그란데 애 아빠는 누군지 짐작이 갑니꺼?"
"야가 말을 안 하니 지도 모릅니더."
"진단서 떼줄가예?"
"진단서예?"
"예! 고소하려면 필요하다 아입니꺼?"
"그건 야가 정신 차리면 그때 이야기 해보겠심니더. 지금 야가 너무 힘든데, 몇일 여기 입원해 있으모 안되겠심니꺼?"
"마 그라이소. 안 그래도 입원실이 비어 있으니까 하루 정도 쉬면서 기력을 회복하면 데리고 가이소. 그라고 범죄로 인한 임신이면 임신중절수술도 가능한데, 어떻게 할 지 잘 생각해 보이소."
"알겠심니더."
이연옥 원장은 태석이를 그만 집으로 돌려보냈다.
"너는 고마 집에 들어가 봐라. 니 부모님 걱정하실끼다."
"괜찮심니더. 내사 재호랑 둘도 없는 친구 아입니꺼. 그리고 소연이도 모르는 사이도 아이고 말이지예."
"그래도 여자 아이라 남자인 니가 있기엔 뭐 하다 아이가? 고만 들어가 보고, 재호가 궁금하면 내일 다시 와서 물어보면 안 되겠나?"
"네, 알겠심니더. 제 생각이 짧았어예. 그라모 원장님도 좀 눈좀 붙이시소. 내일 저녁에 다시 올께예."
"그래. 조심히 드가라. 내 멀리 안 나간다."
"예, 원장님! 안녕히 계시이소."
앞으로 운명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지 알지 못한 채, 태석은 해군 진해병원을 나와서 어둠 속으로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