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좁혀오는 수사망
어젯밤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야근했다고 하루 쉬고 그 다음날 출근하게 된 정한길은 그날 오후에 진해여고에 다니는 자신의 딸 정희수에게서 뜬금없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빠! 내 희수다. 오늘 점심시간에 미옥이한테 아주 재밌는 이야기 하나 들었다 아이가."
"뭔데 그라노?"
"그 얼마전에 살인사건으로 연행한 소연이 있다 아이가?"
"가가 와?"
"글쎄 그 고아원 과장을 죽인게 사실은 소연이가 아니라 소연이 남자 친구 재호라던데."
"뭐라꼬? 니 지금 뭐라고 했노?"
"글쎄 그 고아원 과장 김머시기 있잖아?"
"김승환이."
"맞다. 그 김승환이를 죽인 게 소연이 아니라 재호일 가능성이 크다고 카던데."
"누가?"
"누구긴 누구야? 미옥이가 그카던데."
"참말이가?"
"내가 뭐 한다꼬 아부지한테 거짓말 하겠노? 진짜다. 그 가시나 남자 친구가 재호라고 있다 아이가. 한태석이 마창진 고교연합 통이긴 한데, 진짜 통은 재호 근마다. 마창진 연합의 일진들 사이에서는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그라니까 아부지도 죄없는 그 가시나 고마 놔주라. 그래도 가끔은 내 말도 잘 들어주고, 시험 공부도 도와준다 아이가."
"그래 알았다. 상다보니까 니가 도움이 될 때도 다 있네. 내 일이 급해서 고마 끊을꾸마."
정한길은 하루 비번도 반납하고 배일도 형사에게도 전화를 걸어서 경찰서로 나오라고 한 다음, 재호의 소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먼저 이연옥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재호의 소재를 물어봤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제황경찰서의 정한길 형삽니더. 그 얼마 전에 자립한 연재호 근마 어디로 이사갔는지 혹시 아십니꺼?"
"당신이 무슨 낯짝으로 내한테 전화를 하는교?"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꺼?"
"니들 어제 소연이를 강간한 거 내 다 안다. 이 짐승같은 놈!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가?"
"아니 원장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교? 누가 누구를 강간해요?"
"니들이 강간했다고 어제 해군 진해병원 응급실 의사가 그카더라. 성폭행 당할 때 저항흔도 몸 여기저기에 있고, 게다가 자궁 안에 니들 정액도 남아 있어서 그거 증거로 다 채취해놨다."
"아니 그 정액이 우리 꺼라고 누가 그럽디까? 그게 내 건지 연재호라는 근마 건지 어떻게 압니꺼?"
"지금 재호가 그랬다고 갸한테 덮어 씌우는 기가? 에라이 문디 자슥아! 그 정액 어제 받은 기다. 재호는 이틀째 소연이 콧빼기도 본적이 없다 카던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이 짐승 새끼야! 니는 사람 새끼가 아이다. 짐승이지. 누구 건지 모른다고 했더나? 혈액형 항원 검출로 알 수 있다 카더라."
"혈액형 항원 검출요? 어디 맘대로 함 해보이소. 그라고 아직 인생이 창창한 여자 아이 누구한테 돌림빵 당했다는 소문 나면 참 좋겠심니더. 진짜로 그걸 원합니꺼? 그라지 말고 우리 만나서 함 이야기 해보입시더. 모두가 해피한 결말로 말입니더."
"챠뿌라 마! 내는 니 같은 짐승들이랑은 이야기 안 한다. 니들은 내가 반드시 옷 벗기고 콩밥 먹게 해주꾸마."
"저기 원장님요! 앞 길이 구만리인 소연이 인생도 생각하셔야 안 되겠심니꺼? 원장님 지금 화난다고 갸 성폭행 당한 사실 다 알리뿌면 갸는 진해 바닥에서 어데 얼굴 들고 살겠심니꺼? 딴 떼 가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텐데요."
"니 딸 같은 아이를 무자비하게 짓밟은 놈이 지금 갸 인생 걱정해주는 기가? 니 어제 남성준 치안감한테 전화 왔다는 소리 못 들었더나? 갸가 내 아들이다. 니들 단단히 각오해야 할 끼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머리속이 새하예진 정한길이 다급하게 이연옥 원장을 불러댔다.
"자 잠깐만요! 원장님요!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우리 만나서 이야기 합시더. 소연이랑 재호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다가 말입니더."
"그런 게 있겠나? 그래 니 말이나 함 들어보자. 언제 어디서 봤으면 하노?"
"원장님 나이도 있으셔서 움직이기도 불편하신데, 제가 이따 저녁에 희망원으로 찾아가겠심니더."
"그래, 알았다. 니 내를 설득시킬만한 해결책 없으모 단디 각오해야 할 끼다."
"네. 알겠심니더."
이연옥 원장을 겨우 달래고 시간을 번 정한길은 배일도와 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강구했다.
"우짜면 좋겠노? 그 원장이 다 알았다 아이가."
"아이 씨팔! 똥밟았네. 남들은 숱하게 잘못을 해도 잘도 넘어가던데, 재수없게 와 하필 이런 일이 내한테 생기는 거고?"
"내 말이 그 말이다. 내도 억수로 억울하다 아이가."
"와 안 그렇겠노? 서장님이 시켜서 한 걸 와 우리가 다 뒤집어 써야 하는데? 그라고 처녀도 아닌 아 때문에 이게 뭐꼬?"
"잠시 억울한 감정은 제쳐두고 우리 이 불똥을 피해갈 방법을 찾아보자 마."
"그래. 무슨 좋은 생각 있더나?"
"그 이렇게 하모 어떻겠노?"
"어떻게?"
"재호 근마가 2달 전에 정소연을 성폭행해서 갸가 임신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소연을 수시로 성폭행 해왔다. 그리고 자립한 이후, 그라니까 정확하게 이틀 전 새벽에도 희망원에 몰래 숨어 들어서 소연을 성폭행하는 걸 김승환 과장이 말리는 과정에서 그를 심하게 구타해서 죽이고 달아났다."
"니 말은 그러니까, 정소연 몸에서 채취한 정자는 연재호 거다? 이 말이제?"
"빙고! 어떴노?"
"어떻기는? 기똥차다 아이가. 마 시나리오는 완벽하게 짰으니까 이제 남은 건 재호를 잡으러 가는 기네?"
"이젠 마 척하면 척이네. 하하하! 퍼뜩 가자!"
정한길과 배일도 형사는 서로 야비한 눈빛을 주고 받으며 호탕하게 웃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들은 사람 찾는 데는 도가 튼 형사 답게 먼저 재호가 다니는 진해고등학교 교무실로 가서 재호의 담임 강충식을 찾았다.
"안녕하십니꺼? 연재호 담임 되십니꺼?"
"네, 맞심니더. 그란데 뭐하시는 분들입니꺼?"
"아 예. 저희는 제황경찰서 강력계 형사들입니더."
"예? 경차서요? 거서 무슨 일로 재호를 찾심니꺼?"
"재호가 살인을 저지른 것 같아서 협조를 구하러 왔심니더."
"갸가 살인을요? 갸가 얼마나 성실한 아인데, 그럴리가 없심니더. 뭔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닌가 싶네예."
"그건 재호를 만나서 조사해 보면 알게되겠지예."
"그런데 여까지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꺼?"
"재호가 희망원에서 자립을 해서 이사를 갔다고 카던데, 희망원 원장님도 그 주소를 모른다고 해서 담임샘은 혹시 알까 해서 아입니꺼. 재호 이사간 주소 알지예?"
"잠시만 기다려 보이소."
강충식은 학생들의 인적사항이 기록된 서류 파일 하나를 가지고 오더니, 재호가 새로 이사간 곳의 주소를 발견하고는 잠시 서류를 덮고 두 손을 기도하는 모양으로 이마에 맞대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쌤요! 와그라시는데예? 와 주소가 없심니꺼?"
"그게 아이고 이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심니더."
"뭘 고민합니꺼? 재호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고, 의지할 데 없는 유가족들도 있는데 말입니더."
"일단 알려는 주겠지만, 재호를 진상이 다 밝혀질 때까지 재호 막 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이소. 갸 진짜 착한 애라예. 난 아직도 갸가 누군가를 죽였다는 게 상상이 안 갑니더."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는 거 아입니꺼? 마 너무 걱정하지 마이소. 샘 말대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곱게 다루겠심니더."
"알겠심니더. 재호 주소는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인근 자은동 ...번지 입니더."
"고맙심니더. 바빠서 고만 일어나겠심니더."
정한길과 배일도 형사는 열심히 주소를 받아 적고는 부리나케 교무실을 박차고 나가서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자동차의 악셀을 풀로 밟으며 둘은 자은동에 있는 프랭크의 저택으로 들이닥쳤다. 요란한 자동차 타이어 마찰음 소리를 내며 도착한 정한길은 차의 시동을 끈 후 재호가 있는 프랭크의 저택 초인종을 미친 듯이 눌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