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소년

제12화 탈출

by 김하록

"정형사님! 잠깐만요. 이 저택 좀 보이소. 이 정도면 진해 최고의 갑부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이게 정말 재호 근마가 사는 곳이 맞심니꺼?"

"봐라 마. 여기 적혀 있는 주소랑 지번이 일치한다 아이가."


정한길이 재호의 담임샘한테서 받아 적은 주소가 적힌 쪽지를 배일도 형사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아 이거 뱀굴에 들어가는 것처럼 느낌히 쎄하다 아입니꺼? 뭔가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리는 느낌요?"

"내도 고마 벌집을 건드리는 거 아인가 싶긴 한데, 그래도 마 어쩌겠노? 우리가 강간죄로 콩밥 안묵을라카믄 재호 근마를 잡아 넣고, 독박 쓰게 해야 안카겠나?"

"근데, 안에 아무도 없는 갑네예. 아무런 기척이 없는데 우짜죠?"


안에서는 이제 막 진해를 떠서 부산으로 가려던 프랭크와 재호가 숨죽이며 이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우짜긴? 늘 하던 대로 해야지."

"아 이건 아인데 말이지예."

"시끄럽다. 고마 담이나 타라."

"제가예?"

"그럼 니가 먼저 들어가 봐야지. 내가 할까?"

"아 이거 아인데."


배일도가 쇠창살이 박혀있는 곳을 피해서 조심스럽게 담을 넘는 순간, 안에서 프랭크의 서슬퍼런 경고가 영어로 흘러나왔다.


"여기는 미국 영토다. 한 발자국만 들여 놓으면 발포하갰다."

"행님요! 지금 전마가 무슨 하는 겁니꺼?"

"들어오면 쏘겠다. 뭐 그런 거 아이겠나?"

"참말로 쏘면 우짤랍니꺼?"

"여가 대한민국인데, 그래도 쏘겠나? 그냥 엄포로 뺑끼 치는 거겠지. 고마 들어가봐라. 니 들어가자마자 권총 빼들고 경찰이라고 크게 소리치삐라. 그래야 쏘지 않을 거 아이가?"

"알겠심니더. 행님도 바로 들어오이소."

"그래, 알았다. 퍼뜩 넘어가봐라."


배일도 형사가 담에서 프랭크의 저택 마당으로 먼저 뛰어내리자마자 권총을 빼들고는크게 경찰이라고 외쳤고, 정한길이 담벼락에 박혀 있는 쇠창살 사이에 손을 올리는 순간, 프랭크의 산탄총이 엄청난 소리와 함께 발사되었다. 정한길의 오른손이 통째로 날아가버렸고, 프랭크는 이어서 마당 안으로 뛰어내린 배일도 형사의 왼쪽 무릎과 권총을 든 오른손을 향해 발포했다. 배일도 형사의 오른손과 왼쪽 무릎이 터져서 작살이 났고, 순식간에 이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버렸다.


"하 항복! 항복!"

"잠깐만예! 잠깐만예! 우리 경찰이라예."

"내가 경고했지? 한 발자국만 들어오면 발포하겠다고. 왜 내집에 무단침입한 거야?"

"연재호 학생 여 산다고 케서 체포하려고 왔심니더."

"체포영장 있어?"


영어를 못하는 배일도 형사는 정한길의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았다.


"영장 있냐고 물어보는 것 같다. 이거 마 X됐뿌네."


정한길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힘없이 대답했다.


"No!"

"그럼 무단으로 주거침입 한 거니까, 죽어도 날 원망하지 마."


프랭크가 산탄총을 정한길의 머리에 갖다대고 위협하자, 정한길과 배일도 형사는 넙죽 엎드리며 살려달라고 피가 철철 흐르는 오른손과 멀쩡한 왼손을 들어서 싹싹 비벼대며 빌었다. 프랭크는 그 모습을 보고 씩 웃고는 집안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재호를 향해 빨리 지프차에 오르라고 소리쳤다.


"재호! 빨리 나와. 더 늦으면 안 돼!"

"알겠어요. 프랭크 형!"


재호는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정한길과 배일도가 멀쩡히 지켜보는 가운데 프랭크의 지프차에 탑승했다. 프랭크는 시동을 걸자마자 풀로 악셀을 밟았고, 뒤에 남겨진 정한길과 배일도 형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이 타고온 차량으로 가서 불편한 왼손으로 경찰서 종합상황실에 무전을 쳐서 지원을 요청했다.


"511! 여기는 정한길 에이아이! 연재호 살인피의자 체포시도하다 정한길 에이아이 오른손에 총상, 배일도 에스피 오른손과 왼쪽 무릎에 산탄총에 의한 총상을 입어서 출혈이 심한 상태. 피의자는 지프차를 타고 도망 중, 차량은 국방색 지프차, 차량번호는 zen 1899. 전경력 및 급차 마징굴 방향으로 주급 종원!"

"511! 관내 사오 없는 순마! 살인피의자 경관총격후 도망 중. 마징굴로 전경력 및 급차 주급 종착!"


정한길의 무전을 받고 제황경찰서의 출동가능한 전경력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마징굴을 향해 프랭크가 모는 지프차를 추적했다.


같은 시각 프랭크도 미군부대의 에반스, 가르시아, 새뮤얼, 잭슨, 토미에게 긴급하게 무전을 쳤다.


"여기는 찰리. 브라보 나와라 오버!"

"여기는 브라보! 찰리! 말하라 오버!"

"에반스! 플랜 B. 반복한다. 플랜 B. 지금 당장 시행할 것."

"알았다. 오버!"


프랭크와 재호가 탄 지프차가 경찰자들에게 거의 따라 잡혔을 무렵 프랭크의 지프차가 마징굴로 막 들어서자마자, 미리 거기서 대기하고 있던 가르시아, 새뮤얼, 잭슨, 에반스가 철골 바리게이트로 마징굴의 진입을 차단했다. M60과 유탄발사기와 M16 소총으로 무장한 군용 트럭에서 에반스가 스피커로 프랭크의 지프차를 추격하던 경찰차들에게 경고방송을 했다.


"여기는 미군 작전지역이다. 돌아가라. 반복한다. 여기는 미군의 작전지역이다. 돌아가라. 진입시 발포하겠다."

"우리는 살인피의자를 추적중이다. 바리케이트를 치우고 진입을 허락해 달라. 우리는 살인피의자를 추적중이다. 바리케이트를 치우고 진입을 허락해 달라."

"여기는 미군 작전지역이다. 돌아가라. 반복한다. 여기는 미군의 작전지역이다. 돌아가라. 진입시 발포하겠다."


경찰자들이 요란한 경적을 울려대고, 스피커로 아무리 말을 해도 에반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작전 장교 프랭크는 사전에 치밀하게 트레이닝 스케줄을 확인하고, 때마침 마징굴 인근과 진해, 마산, 부산에 걸친 작전을 계획하고 진행했다. 그 일환으로 프랭크는 에반스와 그의 팀들에게 엄청난 보수를 지급하고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협조를 구해둔 것이었다.


다급해진 경찰들이 쪽수로 밀어부치며 철골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강제로 진입하려고 다가서는 순간 투투투투투! 그들의 발앞에 M 60 기관단총에서 중지 손가락만한 총알들이 불을 뿜으며 빗발쳤다.


"와 전마 저것들 완전히 미쳤는 갑네예. 이거 잘못하다가 비명횡사하겠심니더. 상대가 미군들이라 순직 처리도 안되는 거 아입니꺼?"

"하 낭패네. 전마들은 기관단총에 유탄발사기까지 들고 있는데, 우리는 딸랑 이 권총으로 뭘 할 수 있겠노?"

"이건 애초에 되도 않는 게임 아입니꺼? 서장님한테 빨리 무천 쳐서 물어 보입시더."


그렇게 경찰차들과 미군들이 대치를 하는 동안 프랭크는 전속력으로 마산을 지나 부산 서쪽으로 진입한 다음 계속해서 감천항을 향해 달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경찰들은 경찰서장의 지시로 마징굴에서 철수하면서 마산 경찰서와 부산경찰서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미 프랭크의 이동루트에 따라서 미군의 작전이 진행되고 있어서 마산과 부산의 경찰들도 프랭크의 지프차 근처로는 접근할 수 없었다. 마침내 부산 감천항에 도착하여 이탈리아 국적의 여객 겸 화물선 로이드 호의 탑승구 앞에서 프랭크는 재호와 격한 이별의 포옹을 하면서 맹세했다.


"재호! 기억해. 넌 내 동생이야. 절대로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먼저 가서 조금만 기다려. 내가 곧 따라갈게."

"알겠어요. 프랭크 형! 정말 고마워요."

"천만에! 마음 단단히 먹고 내가 갈 때까지만 버티도록 해."

"네, 형! 그리고 우리 소연이 잘 좀 살펴봐 주세요."

"알았으니까, 소연이는 걱정하지 마."


재호는 프랭크와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하고는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로이드 호에 탑승했다. 요란한 뱃고동 소리와 함께 로이드호는 물살을 가르며 태국의 클롱 토이 항을 향해 나아갔다. 순수한 사랑을 마음에 품고, 소연과 평범한 가정을 이루어서 알콩달콩 살고자 했던 재호의 꿈은 배가 지나간 여울처럼 서서히 그의 삶에서 지워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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