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레파로 건너오다.

by 김하록

철진은 매일 아침을 먹고 나면 펄과 함께 수심이 깊은 바다로 나가서 잠수를 연습했다. 철진은 매번 자신이 숨을 도무지 참지 못하고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 보겠다고 생각했다. 40미터를 수차례 왕복 하면서 한계를 넘어섰고, 다시 50미터 이상 물속으로 잠수하는 그 순간은 정말이지 천하의 철진이라고 하더라도 생명을 건 도박을 해야 했다. 아니 매 순간 순간이 도박이었다.

철진은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옆에 펄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몰랐다. 그녀는 바다 속에 있어서 만큼은 생명과 안전을 관장하는 절대자이자 여신과도 같은 존재감이 있었다. 그녀로 인해 철진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일 수가 있었다.

"펄! 펄의 아버지는 왜 그렇게 육지에 가는 것을 싫어해?"

"육지에는 독충도 많고, 특히 오랜 세월 바자우족을 배척했던 육지인들로 인해서 그들이 기르던 개들조차도 바자우족만 보면 사정 없이 물어 뜯었어요. 아버지는 어렸을 때 그 개들한테 물린 고통이 뼛속 깊이 트라우마로 각인돼 있어서 그래요."

"그러면 펄이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다른 세상으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간단해요. 제가 결혼해서 다른 바자우족의 배로 건너가거나 그의 뽄도한으로 건너가면 돼요."

"결혼이 그렇게 간단한 거야?"

"네! 바다에 사는 저희 바자우족은 그렇게 자신이 살던 배에서 배우자가 될 사람의 배로 옮겨가기만 하면 돼요."

"그 배라는 거 말이야. 어떤 종류의 배이어야 한다는 제한이 있는 건 아니지?"

"바자우 족이 타고 다니는 전통 배는 까유부띠라는 나무를 깍아서 만드는데 그 배를 빠암붓이라고 해요. 빠암붓은 10년 정도 탈 수 있어요. 그리고 길이 10미터, 폭이 2미터 정도 내외로 바자우족의 주거가 되는 배를 Lepa라고 해요. 레빠는 보통 모양과 크기가 비슷한데, 딱히 제한이 있는 건 아니에요. 말그대로 바다에서 생활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배이기만 하면 되는 거죠. 호호호!"

철진은 해맑게 웃으며 설명하는 펄의 뺨에 살짝 홍조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펄은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원래 뽄도한에 사는 바자우족과 바다에 사는 바자우족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요. 그래서 결혼도 뽄도한에 사는 바자우족은 그들끼리 하는 경향이 있고, 바다의 집시라고 불리는 배에서 생활하는 바자우족은 아까 제가 말한대로 배에서 배로 옮겨가기만 하면 되는데, 뽄도한에 살던 바자우 여인이 선상 바자우 남자에게로 시집가는 것이 금지된 것은 아니에요."

"펄! 이따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우리 그 빠암붓과 레파 만드는 곳에 한번 가볼까?"

"네? 빠암붓과 레파 만드는 곳에요?"

"응! 빠암붓과 레파! 어떻게 만드는 지 궁금해서."

펄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화끈거리는 걸 도무지 감출 수가 없었다. 철진은 레파라는 말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변한 펄의 얼굴을 보자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펄은 얼른 자신의 달아오른 홍조를 감추려는 듯 물 속으로 깊이 잠수해 들어갔다. 그런 펄의 뒤를 따라서 철진도 물 속 깊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주일, 한 달, 두 달, 그리고 또 두 달이 두 번 더 순식간에 6 개월이 지나갔고, 철진은 이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펄과 같이 큰 어려움 없이 수중 백 미터가 넘는 깊이를 잠수할 수 있었다. 철진이 펄과 함께 뽄도한에서 생활한 지 어느새 두 달이 되는 날! 철진은 몇 일 간 펄의 아버지 베라린이 아갈아갈을 수확하고 말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철진의 먼 조상에게서도 해상 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인지 펄과 함께 매일 잠수를 연습하는 동안 철진의 잠자고 있던 유전자가 깨어났다. 바자우족의 비장은 보통 사람들의 1.5배 정도 되어서 바다 속에서 숨을 쉬지 않고 10분 이상을 견딜 수 있는데, 철진의 비장도 바자우족의 그것처럼 원래 크게 타고났었다.

하루 하루 펄과 함게 잠수하면서 철진의 잠수 능력은 어느새 펄과 필적하게 되었다. 이들은 서로 경쟁을 하면서 매일 기록을 경신하는 중이었다.


어느새 철진이 펄에 의해서 구조되어 함께 펄의 집에서 생활한 지 1년이 되었다. 철진과 펄은 이날도 잠수 경쟁을 하면서 물 속을 마음껏 유영했고, 어느새 수평선을 선홍빛으로 붉게 물들이며 석양이 지고 있었다. 철진과 펄은 진하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사랑은 바다 속에서도 뭍에서도 계속해서 깊어만 갔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하록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삶과 생존의 문제에서 갈등과 고뇌를 자양분 삼아 삶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는 작가 김하록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11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10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2화Pea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