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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무덤을 헤치고

by 김하록

철진이 죽은 후 부산 지역은 물론이고 전국의 고등학교와 중학교 일진들은 모두 가슴에 '조의'라고 쓰여진 검은 리본을 달고 다녔다. 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최단 기간에 단신으로 부산 지역의 조폭들을 무릎 꿇리고, 부산 지역의 전체 통을 차지한 것만으로도 이들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최근에 뉴스에 보도된 부산고등검찰청의 폭파 장면과 미니건으로 경찰특공대와 UDT를 쓸어버리고, 또 헬기 3대와 탱크 2대를 날려버린 어마무시한 스케일의 무용담에 부산은 물론이고 전국의 일진들은 완전히 넋을 놓고 철진의 광팬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철진은 장렬히 전사했지만 이들의 가슴 속에 다시 없을 진정한 사나이의 표본으로 영원한 전설로 남았던 것이었다.

유술희의 세력과 하중달의 개미군단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와해된 럭키파의 나와바리를 그대로 접수한 채로, 운영은 이세준과 탁건우 등 그의 무리들에게 맡겼다.

천강은 한국과 중국 사이에 팽팽한 외교적인 긴장 속에 여전히 중화인민공화국 총영사관에 머루르고 있었다. 중국과의 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던 한국 정부는 사실상 범죄자를 특정하거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곤란한 문제 등을 고려해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기로 내부적으로는 결정이 난 상태였다.

어차피 처벌해야 될 중국인 불법체류자 중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세 명을 대신 내세워서 그들을 이번 사건의 범죄자로 처벌함으로써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 세 명에 대해서도 원래 받아야 할 형량보다 감형해주기로 합의하고서야 양국 사이에 긴장을 완화할 수 있었다.

천강은 철진을 매장한 지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완전한 자유의 몸으로 파크하얏트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으로 보라와 지안을 찾아갔다. 보라와 지안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뭔가를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천강을 보자 다들 너무 반가워서 진한 포옹으로 눈물의 재회를 하고는 서둘러서 천강을 지하주차장으로 데리고 갔다.


"천강아 어서 타. 늦으면 진짜 후회할 지도 몰라."

"뭐가 뭔지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일단 알았어."

"천강아! 일단 궁금한 것이 많더라도 참아줘."

"그래, 알았어. 필요하면 이야기 하겠지."

파크하얏트에서 출발해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76km, 통영대전고속도로를 타고 87km를 달리다가 새만금포항고속도로 익산에서 장수방면으로 62km를 모든 신호를 무시하고 논스톱으로 달려서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대학리에 있는 칠봉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사위는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져서 철진의 무덤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차로 갈 수 있는 길의 끝에서 내려 LED 손전등을 각기 손에 하나씩 들고서 좌충우돌하며 겨우 철진이 묻혀있는 무덤을 찾을 수 있었다.

천강은 철진의 무덤을 보자 그동안 꽁꽁 억눌러왔던 감정이 다시 폭발했는지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눈물이 온몸을 적실 정도로 통곡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덤 위로 사람의 손이 쑤욱 올라왔다.

손을 보자 천강은 기겁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광소를 터트리며 미친 듯이 맨손으로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보라와 지안도 준비해 온 야전삽으로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안팎에서 무덤을 파헤치자 곧 그 손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었다.


철진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닫혀있던 입을 갑자기 열어 공기를 들이마실 때 공기가 마른 목구멍과 마찰되며 나는 "하아" 소리를 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흙이 조금 묻어있었으나, 천강과 보라, 지안은 철진을 보자 모두가 달려들어서 부둥켜 안고 연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럴 줄 알았어. 내 그럴 줄 알았어. 천하의 권철진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리가 없다고..."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동안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천강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꺽 꺽 울면서 마음껏 감정을 해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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