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by 유재민
“좋은 삶은 좋은 습관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가끔,
너무 막연해서 손에 잡히지 않는 말들과 마주한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내게는 그렇다.
무언가 충만하고, 따뜻하며,
내 안의 평화 같은 것.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살아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이 없다.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은 실천으로 이어지기엔
어찌보면 너무나 멀고, 자체가 가볍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을 들여다 본다.
“행복은 탁월성에 따라 이성을 따르는 활동이다.”
그는 이미 2천 년도 더 전에 말하고 있었다.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기능’이라고.
그 기능은 ‘잘 사는 기술’이고, 그것은 곧 습관 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한 삶 이라는 것에 대한 기준을 하나씩 풀어준다.
가장 핵심은 ‘중용(中庸)’이다.
무엇이든 과하면 안 되고, 부족해도 안 된다.
두려움과 무모함 사이에서 ‘용기’를 찾고,
쾌락과 무감각 사이에서 ‘절제’를 택해야 한다.
중용은 감각이 아니라 훈련이다.
머리로는 알아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우리는 반복하는 그것이 된다.”
결국 습관이 나를 만든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습관은 무수히 많은 ‘선택’의 결과다.
유재민 저자는 철학적으로 난해하며 심오한
고전을 현재의 오늘의 고민으로 끌어낸다.
철학적 개념을 설명하는줄 알았더니,
한 문장 한 문장에 ‘삶에서의 질문’을 쏟아낸다.
불쑥, 지금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다.
철학이란 결국, 삶을 묻는 태도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책장을 넘기다 보니
문득, 삶이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내는가의 누적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매일의 작은 선택 위에 나라는 사람의 삶이
세워진다. 작은 선택의 연속선상에서
결국 일관된 방향성을 가진 삶을 살아간다.
그 일관성이 쌓이면, 흔들리지 않는다.
감정에 휘둘리는 대신, 기준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기준이 있는 삶이 덜 피곤하고, 덜 방황한다.
나 자신을 신뢰하게 되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사랑하며 끌고 가게된다.
그리고 그 기준은 타인이 줄 수 있는게 아니다.
누군가가 말해주는 정답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오직 스스로 쌓아 올린 습관과 성찰만이
스스로에게 좋은 나침반이 되어 준다.
유재민 저자의 해설이 참 좋은 이유는,
우리를 고전 속 인물로 그들의 방식으로
유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춘 유연한 해설로
생각을 전환하게 해준다.
그 철학자의 고전 철학을 지금 여기,
내 삶의 ‘방향’과 ‘기준’을 다시 묻는 도구로 만들어 주었다.
책을 내려놓고 나에게 남은 질문은 단 하나.
나는 지금, 어떤 습관을 쌓아가고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좋은 삶이란, 좋은 습관을 반복하는 삶이다.”
그러니,
오늘 내가 선택한 이 하루가
그저 흘러가는 하루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향한
작은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