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강의 에서 발견한 책 속의 책
『장하준의 를경제학 강의』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를 읽다가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이야기에 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동물농장』을 다시 읽고 나서 책을 덮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이야기가 무거워서가 아니라, 나에게 온 불편함의 온도 때문이었다.
조지 오웰의 이야기는 늘 그렇다.
크게 소리치지 않는데도 읽고 난 뒤에는 조용히 오래 남는다.
『동물농장』은 단순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억압하는 인간, 착취당하는 동물. 불공정한 구조를 뒤엎기 위한 혁명.
처음엔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스토리를 따라 간다.
이건 정의의 이야기라고. 그런데 작가는 정의를 끝까지 지켜 주지 않는다.
혁명 이후의 농장이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처형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변화들이 하나둘씩 쌓여 간다.
규칙의 문장이 상황에 따라 조금씩 바뀌고, 기억은 애매해지고,
귀찮은 행동이 되어버리는 질문덕에 번강제적인 침묵이 이어진다.
“원래 그랬던가?”
이 말이 등장할 즈음이면 이미 많은 것이 바뀐 후였다.
오웰의 풍자는 폭력을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를 사용하여 섬세하게 롤러코스터를 태운다.
말을 바꾸고, 의미를 흐리고, 기억을 관리하게 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문장이“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
이 문장이 바뀌는 과정은 변화의 바람이면서도
너무 조용하기때문데 더 무섭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반대할 필요가 없다고 믿게 된다.
이 지점에서 『동물농장』은 단순한 권력자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로 옮겨 간다.
누가 지배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생각하기를 멈췄는지에 대한 이야기.
질문하지 않는 편안함,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감,
생각하지 않아도 굴러가는 일상.
그 안에서 돼지들이 장악한 농장은 점점 더 견고해진다.
책의 마지막 장면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1984』가 떠올랐다.
솔직히 말하면 오래전 읽었던 터라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빅브라더, 감시, 텔레스크린. 그 이야기들이 조각난 이미지들로 남아 있다.
그런데 느낌만은 분명하다.
조지오웰이라는 이 작가는 ‘나쁜 권력’에 대한 사회보다
‘사유하지 않는 사회’를 더더 두려워 했다는 것을
.
그래서 나는 『1984』를 다시 꺼내 보려 한다.
줄거리를 복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어떤 문장에서 멈춰 서게 되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
좋은 책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조지 오웰의 책은 그 질문을 세상이 아니라 내 생각을 향해 던진다.
그래서 읽고 나면 조금 불편해지고, 조금 조용해지고,
조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도 그게 이 책들이 여전히 오랫동안 살아 숨쉬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