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떤 그림 앞에 멈춰 섰는가?
하루에도 수십 번, 그림 앞에 멈춰 선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구석진 벤치에 앉아
빛의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고,
누군가 남기고 간 숨결 같은 여운을 느낀다.
그는 말한다.
같은 자리, 같은 풍경인데도 나는 매일 조금씩 기울어간다고.
그 기울어짐은 무너짐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더 닮아가는 방향일지도 모른다고.
고요한 하루 속에서,
한 사람이 만들어낸 감정의 결의 묘사는
어쩌면 한 편의 시보다 더 섬세하다.
자신의 감정을 묘사하는 글에 시선이 머문다.
그는 말한다.
책은 시적인 언어로 잔잔하게 표현된 글들.
그저 미술관을 거닐며 느낀 것들을 툭툭 적어낸다.
하지만 그 안엔, 낡은 벤치에 스며든 햇살처럼
오래된 생각들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다.
어느 날, 그는 렘브란트의 그림 앞에 멈춰 선다.
시적인 표현이 마음에 와닿는다.
“이토록 어두운 그림인데도, 그 안에서 빛이 흘러나온다.”
그 문장을 삼킨 날, 나는 혼자 오래 앓았다.
내 마음속 어둠에도
어쩌면 그런 빛이 있을까.
그건 너무 조용해서
내가 몰랐던 건 아닐까.
그는 그림을 감상하지 않는다.
그림과 함께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누가 어떤 작품 앞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어떤 계절에 어떤 작품이 더 어울리는지,
심지어 누구와 함께 왔는지까지 그는 기억한다.
감상은 그림 앞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림 앞에 선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조용히 관찰한다.
움직임보다 멈춤을.
말보다 눈빛을.
외침보다 숨을.
슬픔의 원천인, 잃어버린 형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는 말한다.
형이 떠난 뒤로, 설명하지 않게 되었다고.
이유 없는 것들을 그냥 이유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그 말이 내 마음에 울림을 내어 준다.
상실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그 마음이.
우리 인생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럴 땐 설명 대신 바라보는 일,
질문 대신 기다리는 일.
그런 것들이 때로는 더 큰 위로가 된다.
책 속의 미술관은 한 편의 시 같다.
고흐의 자화상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 불꽃처럼 다가오고,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정적 속의 사랑처럼 어딘가를 바라본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 —
“소녀의 시선은 나를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날 보는 것 같아, 오늘도 그 앞에 선다.”
그 문장이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는 건 아닐까.
아무도 몰라도 괜찮은 척하면서,
사실은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의 삶의 태도였다.
경비라는 직업에 굳이 자부심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건 굉장히 다른 감정이다.
사랑하지만 소유하려 하지 않고,
감탄하지만 설명하지 않으며,
바라보지만 간섭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그의 글, 그의 하루, 그의 존재를 만들어준다.
‘나는 오늘 누구를 지켰는가.’
‘나는 내 하루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그리고,‘나는 오늘 어떤 그림 앞에 멈춰 섰는가.’
물론, 진짜 그림이 아니어도 좋다.
마음에 스친 문장 하나, 스쳐간 눈빛 하나.
그리고 그런 순간 앞에 내가 잠시 멈춰 서 있었다면,
그것이 어쩌면 나만의 메트로폴리탄이었을지도.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았고, 지켰고, 걸었다.
그 안에 담긴 다정함이, 말보다 더 큰 위로였다.
누구나 가끔은 도망치고 싶어진다.
정신없는 세상에서 한 발 비켜서,
생각이 고요히 머무는 세상에 발 딛고 싶어진다.
그는 그런 시간을 살아간다.
느리지만 정확하게.
아무 말 없이 지켜보며.
그의 하루는 말하지 않아 더 깊고,
움직이지 않아 더 따뜻하다.
그렇게 우리가 멈춰 서는 순간.
그 앞에 그림이 있든, 문장이 있든, 누군가의 눈빛이 있든 —
그 모든 순간이 어쩌면 우리만의 미술관일지도.
말 대신 바라보는 마음.
설명 대신 감각하는 태도.
그게 우리를 조용히 지켜주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