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이라고 믿는 기준의 민낯.
한 인간의 정신적 붕괴를 바라보는 일이란,
생각보다 더 고요하게 무너지는 일이다.
단지 육식을 거부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다름’이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순간, 폭력은 침묵 속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거부였지만
그녀는 끝내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 파편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채식주의자 - 몽고반점 - 나무 불꽃.
이름만으로도 불운한 기운을 머금은 세 개의 장.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정신이 나간 여자라고, 남편이 참 불쌍하다고,
가족이 얼마나 고생했겠냐고.
하지만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그녀의 침묵을 이해하려 했던가.
고기를 거부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선택을 끝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워한 세상의 잣대가 문제였음을
작가는 날카롭게,
그러나 한없이 서늘하게 말한다.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이 점점 스산해졌다.
그녀의 외침은 한 번도 소리로 발화된 적 없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가장 큰 울림이 되어 다가온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다름을 ‘이상함’으로 재단해 왔을까.
어쩌면 내 안에도 그녀를 몰아세운
그 무수한 시선 중 하나가 숨어 있지는 않았을까.
무언가를 거부하는 일은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녀는 고기를 거부했지만,
결국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무언의 폭력을 버티다 지쳐 나무가 되기를 택했다.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삶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로 충분한 무언가가 되기를 원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 절실한 바람조차,
끝내는 오해와 혐오 속에 짓밟히고 마는 장면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이 소설은 나에겐 단순한 이야기의 상상 이상이었다.
불편하고 낯설고, 불쾌하기까지 한 문장들.
그러나 그것은 곧
우리 사회가 ‘정상’이라 믿고 있는 기준의 민낯이었고,
한 인간이 고요히 부서져가는 잔혹한 기록이었다.
책장을 덮은 지금,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책은 나에게 조금 더 묻고,
조금 더 바라보게 한다.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고,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채식주의자』는 쉽게 잊히지 않을 이야기다.
불쾌할 만큼 아름답고, 잔인할 만큼 섬세한,
그 감정의 잔향이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