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에 판단이 섞이면, 그건 비판이 된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본 부부의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부인이 조심스레 말했다.
“저는 마치 벽이랑 사는 것 같아요.”
그 순간, 남편의 얼굴이 굳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마침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벽이라니!”
처음엔 시청자인 나도 얼떨떨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느낌을 말했을 뿐 아닌가.
왜 그 말이 그렇게 큰 상처가 되었을까?
하지만 오은영 박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느낌과 관찰은 다릅니다.
느낌을 말한다고 하지만,
그 안에 평가가 들어가 있을 수 있어요.”
그녀는 “벽 같다"라고 말했지만,
그 말 안엔 ‘당신은 나와 대화하지 않는다’,
‘나는 외롭다’, ‘이 관계는 소통이 없다’는
수많은 감정이 뭉쳐 있었다.
그리고 그건 듣는 이에게는
자신이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러니까, "벽 같다"는 말은 결국
상대방의 존재 전체에 대한 비판처럼 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보다는 이렇게 말하는 게 좋다.
“요즘엔 대화가 줄어들어서,
내가 좀 외롭고 답답하단 느낌이 들어.”
주어를 ‘당신’이 아니라 ‘나’로 두는 것.
그리고 상대를 해석하거나 평가하기보다는
내 감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
이 작은 차이가
때론 관계를 살리고, 때론 나를 구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날카로운 말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을 고르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벽 같다는 말이 튀어나오고,
그래서 대화는 멈춘다.
말은 물처럼 흐르기도 하지만,
칼처럼 상처 주기도 한다.
특히, 그 말이 감정과 섞여 있을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
오늘, 내가 쓰는 말이
누군가에겐 벽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지금 누군가와 대화가 어긋나 있다면,
지금 내가 외롭고 닫힌 느낌이 든다면,
조금만 더 돌아보자.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선물’하듯
전하고 있는지를.
비난이 아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말.
그 말이 관계의 문을 연다.
그리고 그 말은
누구나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