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정상 누구를 위한 말인가요?

정상이라는 이름의 그림자에 대해 생각해 보다.

by 마이진e


가족은 언제나 따뜻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니까, 다정하고, 서로를 지켜주고, 아프면 돌봐주는.


그런데 그 가족 안에서

누군가는 말을 잃고, 누군가는 울음을 삼킨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포기해야 했던 감정들.

‘네가 가족인데 그 정도는 참아야지.’

그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우리는 어느 순간 조금씩 깨닫는다.



『이상한 정상 가족』은

그 '정상'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상처 입혔는지 묻는다.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가족이 하나의 틀로 묶인다.

엄마, 아빠, 아이.


이 구조를 벗어나면

시선은 냉소적이 되고, 제도는 외면한다.



한부모 가족, 입양 가족, 비혼 가족.

서로를 아끼며 함께 사는 그들을

왜 사회는 ‘정상’이 아니라고 말할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있다.

모든 가족을 결혼과 혈연 중심의 틀로 재단하는 사회적 기준이다.

그 기준을 벗어난 순간, 사람은 보호받지 못하고,

가족 내부의 문제는 ‘사적인 일’로 밀려난다.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 돌봄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지우는 관습.

아동의 권리를 부모가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무시하는 일.

이 모든 것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정당화된다.



문제는 국가의 제도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국가가 돌봄을 온전히 가족에게 맡긴다.

‘가족이 알아서 해야죠.’


그 말은 돌봄이라는 이름의 노동을

여성에게, 어머니에게, 딸에게 조용히 넘기고 있다.


시대가 변하며 가족도 변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하나의 형태만을 ‘정상’이라 부를 수 없게됬다.



누군가에게 가족은,

함께 사는 친구일 수도 있고

아플 때 곁에 있어주는 연인일 수도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진짜 가족일 수 있다.


그러니 이제는 묻고 싶다.

우리가 말하는 ‘정상’은 정말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 말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아픈 가시가 되었는지.



『이상한 정상 가족』은 정상이라는 단어에 가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얼굴들을 드러내 준다.

조금 다르고, 조금 낯설지만


정말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가족의 모습들.

우리는 이제 가족의 범주를 넓혀가야 한다.



그리고 가족은 그렇게변해가야 한다.

변화와 울타리의 매듭이 이어지기를


생각을 해 보아야 할 문장.


P.84

사회가 함께 도와줄 것이라는 신뢰 없이,

남을 이겨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불안으로

모두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놀지도 못한 채 일찌감치 떨려나거나

부모의 소망은 충족시켰을 지언정 자기 인생을 위해서는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아이들에게 맘껏 자기 속도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힘껏 가보라고

격려해 줄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