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점 폐점 이후의 시간은 깊은 회고와 함께 흘러갔다. 코코와 보내는 평화로운 일상, 그리고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 얻는 안정감은 내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유일한 빛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끊임없이 내 삶의 다음 페이지를 고민했다.
30대 초반, 패배감에 갇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너진 자리에서 무엇을 다시 쌓아 올려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내비게이션을 잃은 배처럼 망망대해를 헤매는 기분이었다.
보험업계의 실패는 뼈아팠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데이터 기반의 사업 운영, 시장 검증(PoC)의 중요성, 그리고 조직 내 정서적 연결과 유연한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과거의 나는 '능력(세일즈 성과)'에만 치중했을 뿐, 위기 시 팀원들의 불안과 갈등을 해소하지 못해 이직과 성과 저하를 가속화시켰다.
민첩한 디지털 전환과 조직 내부 소통의 부재가 외부 충격 하나만으로도 지점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제는 단순한 질주가 아닌, 더 단단하고 지혜로운 발걸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보험업계에 몸담은 시간은 총 5년.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만큼 업계 내에서는 나름의 입지를 다졌고, 폐점 이후에도 타 보험사 혹은 업계 선배들로부터 관리자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고민했다.
다시 익숙한 길로 돌아가는 것이 맞을까? 아니, 나는 조금 더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통해 나를 확장하고 싶었다. 내 인생의 다음 커리어 방향성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성을 진지하게 탐색하던 나날이었다.
그러다 마침, 과거 보험업계에 몸담고 있었을 때 알고 지내던 모 기업의 이사님에게서 뜻밖의 연락이 한 통 걸려왔다.
그는 나에게 새로운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주류 오더 플랫폼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는데, 함께 할 사람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자네의 사업 개발 역량과 세일즈 경험이라면,
우리 회사에서 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걸세. 사업제휴 리드 자리를 제안하고 싶네."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주류 오더 플랫폼? 보험업과는 전혀 다른 분야였다. 하지만 동시에 흥미가 샘솟았다.
플랫폼 사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O2O 모델이었고, 내가 실패를 통해 배웠던 ‘시장 검증(PoC)'과 ’데이터 기반의 사업 운영'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할 분야였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배움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그 이사님과 직접 만나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사업 비전과 플랫폼이 가진 잠재력을 들으면서, 나의 심장은 다시금 뛰기 시작했다.
"주류는 집으로 배송 불가"라는 규제를 파고들어, 요식업장 혹은 타 산업군과의 대규모 파트너십을 맺고 고객이 집 근처에서 주류를 픽업하도록 연결하는 모델은신선했다. 나는 이 새로운 도전에 매료되었고, 그 자리에서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실패로 인해 한동안 멈춰있던 나의 질주는, 그렇게 새로운 파도를 타고 다시 시작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단순히 속도만을 쫓는 질주가 아니리라.
과거의 아픈 교훈들을 등대 삼아, 더 신중하고 단단한 발걸음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코코와 그녀가 내 삶에 가져다준 안정감, 그리고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연료 삼아,
나는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