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간호학과에 던져지다 - 1
2026년의 오늘, 내 앞에는 익숙한 병원 차트 대신 아이의 알록달록한 장난감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육아휴직이라는 인생의 짧은 쉼표 위에서, 나는 문득 14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남들보다 한 걸음 빨리 세상에 내던져졌던 열아홉 살의 나를 말이다.
사실 나는 간호사가 될 줄 몰랐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간호사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2012년의 대한민국은 거센 '간호학과 붐'이라는 파도 속에 있었다. 성적이 좀 괜찮다 싶은 친구들은 문·이과 구분 없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간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시대의 흐름과 "취업이 최고"라는 어른들의 말씀, 그리고 무엇보다 '집을 떠나 독립하고 싶다'는 발칙한 열망이 뒤섞여 나 역시 그 파도에 몸을 실었다.
그 당시 나에게 간호학이라는 학문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합격 통지서 한 장만 있으면 집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을 뿐이다.
지도 앱을 켜고 본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학교들을 리스트업 하며, 혼자만의 화려한 독립 선언문을 작성하곤 했다. 하지만 나의 그 야심 찬 계획은 부모님의 단호한 한마디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어디를 가든 면허증은 똑같으니, 무조건 통학할 수 있는 곳으로 가라."
독립의 꿈을 싣고 타지로 날아가려던 내 날개는 그렇게 맥없이 꺾였다. 서러움에 눈물을 찔끔 흘리며 집 근처 대학의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들던 날,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대학교에 가면 공부는 적당히 하고 일단 실 것 놀기라도 하겠노라고. 억울해서라도 낭만적인 캠퍼스 생활을 마음껏 누려주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을 너무나 모르는 열아홉 살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입학과 동시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낭만 가득한 캠퍼스 생활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서러웠던 건 내가 '빠른 년생'이라는 점이었다. 동기들이 성인이 되어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할 때, 나는 여전히 법적 미성년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정작 내가 성인이 되어 술 한 잔, 여행 한 번 마음 편히 즐길 수 있게 되었을 땐, 이미 병원 실습이라는 거대한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집안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기면서, 실습복을 입은 채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낮에는 병원에서 긴장감에 짓눌린 채 실습을 하고, 저녁에는 녹초가 된 몸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이중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학과 내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기들과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고 들어온 만학도 언니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
그 팽팽한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어린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새우등'이 터지기 일쑤였다.
육체적인 피로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 더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던, 그야말로 웃픈 적응기가 줄을 서 있었다.
절대 다시는 안 할 줄 알았던 이 일을 어느덧 11년째 이어오고 있는 지금, 나는 그때 그 야속했던 부모님의 권유가 사실은 얼마나 탁월한 선택이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그 정글 같은 학과 생활 속에서 따뜻한 집밥과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 지지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남들보다 한 살 어렸던 열아홉, 아무것도 모르고 간호학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던져졌던 '서툰 뚜아'는 어떻게 거친 파도를 넘어 적응왕이 되었을까.
대학병원 퇴사 후 1.5평 고시원에서 다시 꿈을 꾸고, 선임간호사가 되기까지. 찬란하고도 치열했던 그 적응의 기록을 이제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