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간호학과에 던져지다 - 2
2002년 이전 출생자 중 1, 2월에 태어나 동급생보다 일찍 학교에 가는 사람들. 흔히 ‘빠른 년생’이라 불리는 이 부류에 나도 속해 있었다.
사실 나는 3월생이지만, 어찌어찌 빠른 년생들과 함께 입학하게 되었다. 남들보다 한 살 어리다는 건 축복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의 나에겐 늘 괴로움의 씨앗이었다.
동급생들에 비해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자책할 때면, 어른들은 “나중에 수능 한 번 더 볼 기회가 있는 셈이니 얼마나 좋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셨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내게 재수는 결코 선택지가 아니었다. 수능이라는 거대한 압박감을 한 번 더 견뎌낼 자신도 없었거니와, 다시 한다고 해서 지금보다 성적이 잘 나올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마땅히 이루고 싶은 꿈도 없던 시절, 나는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듯 수시 전형을 통해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가면 드라마처럼 수업을 마치고 술집에 앉아 소개팅도 하고 낭만을 즐길 줄 알았다.
하지만 ‘빠른 년생’이라는 꼬리표는 대학 생활의 입구부터 나를 가로막았다. 법적으로 미성년자인 나는 술집 출입은커녕, 친구들과 여행을 가도 숙소조차 마음 편히 예약할 수 없었다.
학기 초, 동기들이 모여 술자리를 가질 때면 나의 존재는 그들에게 곤란한 숙제가 되었다.
“나 학교 마치고 아르바이트 가야 해. 다들 재밌게 놀아!”
미안해하는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나는 늘 먼저 선수 치듯 밝게 인사하며 돌아섰다.
‘2학년 때 성인이 되면 그때 놀면 되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1학년 때 견고하게 만들어진 무리 사이에 뒤늦게 끼어들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캠퍼스 낭만은 시작도 전에 일찌감치 접혔다.
허무하게 날아간 낭만 대신 나는 실리를 택했다. “그 시간에 등록금이나 벌자.”
2012년 당시,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받는 시급은 단돈 3,500원. 주말 고정 근무에 평일엔 점주님의 대타까지 뛰며 야간 근무자가 올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한 달을 꼬박 일해도 겨우 용돈이나 할 수준이었지, 거액의 등록금을 마련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그렇다면 성적 장학금을 노려야 할 텐데, 이미 사회에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입학한 만학도 언니들을 이길 자신은 도저히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 홈페이지를 뒤지며 온갖 종류의 장학금을 이 잡듯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때 내 눈에 띈 것이 ‘어학 장학금’이었다.
영어와 일본어는 이미 고수들이 많을 것 같아, 나는 전략적으로 ‘기초 중국어’를 선택해 파고들었다.
이때 배운 중국어는 훗날 고시원 생활에서 뜻밖의 도움이 되기도 했으니, 참으로 영리한 선택이었다.
또한, 편의점 계산대에서 의학 용어를 외우다 머리가 지칠 때면 도망치듯 읽었던 책이 '독서 장학금'이라는 의외의 수확을 안겨주었다.
편의점 시급과 어학 장학금, 그리고 책이 선물해 준 독서 장학금까지. 나의 2학기 등록금은 그렇게 ‘적응왕’ 다운 방식으로 하나둘 채워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