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연서 2>
2003년 사스로 온 세계가 시끌벅적하던 시절, 난 중국에 있는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유학을 가 있었다. 엄마는 갓 입학한 대학 생활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내 밑으로 남동생이 둘이나 있고, 포도 과수원 사업도 시설 투자를 많이 해서 가정 경제 사정은 아직 넉넉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엄마는 등단 작가 특별전형으로 문예창착과에 지원을 해서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한 엄마는 활력이 넘쳐 보였다. 난 중국에 있으니까 볼 수 있었다기보다 느낄 수 있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 금요일 오전에 강의 수강을 마치고 집에 가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에 대학 기숙사로 향할 때 엄마가 빼먹지 않고 했던 말이 있다. '넌 좋겠다. 여기를 벗어나 좋은 곳에 가니 말이야' 엄마는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는지 몰랐을 것이다. 대학생이 된 딸이 너무도 부러웠던 엄마는 결국 내가 대학 3학년이 되던해, 대학 입학을 했으니 꿈을 이루긴 했다.
가끔 국제전화로 엄마에게 안부전화를 할 때면 엄마는 빼먹지 않고 하는 푸념이 있었다. 대학에 와서 공부는 안 하고 술 마시고 노는 애들이 왜 이렇게 많냐고 말이다. 과제를 안 하거나 출석을 안 하는 애들도 너무 많다고 하셨다. 엄마는 포도과수원 일을 하면서도 수업을 빼먹는 일이 없다고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엄마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는 엄마가 얘기하는 요즘 애들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중국 유학 시절 시간을 알차게 쓸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대학에 진학할 당시에는 대학에 갈 돈으로 우리 삼 남매를 더 풍족하게 뒷바라지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원망이 앞섰다. 왜냐하면 난 항상 생활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맞딸이라 내색도 하지 못하고 모임에도 안 나가고 친구들에게 밥 한 번 제대로 못 사는 깍쟁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장학금도 받고 방학 때마다 스키장 알바도 하고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여들이려고 애쎠다. 한 창 꾸미고, 사고 싶은 것도 많고 경험해 보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인데, 난 항상 엄마와 동생들을 생각해서 내 필요를 최소한으로 줄여 놓아야 했다. 엄마가 일찍 갑자기 내 곁을 떠나고 나서야, 엄마의 평생소원인 대학교 졸업을 다 마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깨달았다.
다음은 엄마가 이메일과 타자를 배우고 처음 쓴 이메일이다.
2003년 9월 22일
어제까지만 해도 짧은 티에 맨발이었는데 오늘은 긴소매에 양말까지 갖추어 신었는데도 춥다.
이제 수업 끝나고 정보실 왔어 낮에는 바빠서 도저히 올 수 없고 월요일은 야간수업이라 저녁에 내려왔는데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무척 눈치가 보이더라.
그래서 포도 팔러 간다고 내려왔단다. 지난주 내내 학교에 못 오고 이번주엔 할아버지네 이사도 있고 해서 수업이 제대로 되려는지 의문이다.
낮에 네 목소리 잘 안 들려서 끊었는데 애들 데리고 집에 가서 전화할게.
생활비가 떨어진 모양이구나. 넉넉히 채워주지 못하는 엄마아빠 원망은 안 하는지
돈이란 것이 정말 마음대로 안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란다
집은 별일 없고 모두가 자기들 자리에서 열심히들 살아가고 있으니 안 보이는 너만 잘하면 될 것 같다. 완연한 가을을 느끼면서 엄마는 또 침전의 나락에서 헤매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중근이 말에 의하면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서 올가을을 어떻게 잘 넘길지 걱정이라는데
엄마가 놀랬다 어느새 가을을 이야기하는 남자로 컸는가 싶어서......
정말 제법이라는 생각이 안 드니?
중선이는 힘들어하는 것 같더라 날짜는 얼마 안 남고 공부는 안되고 하니 그러려니 해야겠지?
욕심 버리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밖에는 없을 것 같다.
거기 날씨도 쌀쌀하겠지? 환절기에 조심하고 특히 감기는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끔씩 사스 이야기 나오면 엄만 너무 불안하단다.
남은 시간 잘 견뎌서 금의 환양? 했으면 좋겠다.
잘 지내고 저녁에 집에 가서 전화할게.
...................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