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엄마

<딸에게 보내는 연서 3>

by 세아들TV


<프롤로그>

엄마와 내가 주고받은 메일을 읽으며, 새삼 각 자의 관심사가 많이 달랐음을 느꼈다. 엄마는 두 아들과 대학교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얘기해 주고 싶었을 테고, 난 처음으로 연애를 해 본 오빠 얘기를 주로 했다.


엄마는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봄이면 들떠서 봄 꽃을 따오고 여름엔 함께 계곡으로 떠나 휴가를 만끽했다. 가을이면 우울해하며 낙엽을 주웠고, 겨울엔 눈 밭을 뒹굴며 어린 자녀들의 예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다. 기억의 저편에 있는 엄마는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여행 가는 걸 좋아했고 카페에 가서 얘기하는 것도 좋아했다.


엄마는 삶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억척스럽게 학업과 본업(포도과수원)을 해내었다. 그런 엄마의 존재는 나에게 이중적이었다.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지만,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엄마처럼 완벽한 일처리를 해내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주눅이 들었고 우울해졌다. 모든 걸 열심히 하고 잘하는 엄마에게 딸아이의 성격과 행동은 성에 차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것도 잘 못하냐고 답답해하고 한심하게 여길 때가 많았다.


난 대학생이 되면서 비뚤어진 심보가 생겼다. 엄마가 좀 덜 똑똑하고 잘나지 못해서 내가 뭘 하든지 감탄하고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난 22살, 대학 3학년 때 처음으로 연애에 입문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나 엄마 친구 아들을 짝사랑해 본 적은 있지만, 누군가와 직접적으로 마음을 나누고 손을 잡아 보고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는 대학교 3학년이 되어서 시작했다.


2003년 10월 4일에 적은 메일을 보니, 그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중국 노동절은 일주일정도로 길다. 썸 타던 오빠가 하얼빈에서 10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내가 있던 연길 지역으로 잠시 다녀갔다. 그때 기차표가 매진이라, 입석을 타고 왔다고 했던 것 같다.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먼저 고백한 그 오빠가 싫지 않아서 몇 번 편지도 주고받고 선물에 보답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사이였다.


그 오빠는 엄마가 내게 인색했던 표현을 해주었다. 뭘 하든지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고 인정해 주었다. 넌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와 아빠 넌 이것도 못하냐 라는 말을 자주 했었기 때문에 썸남 오빠의 화법은 천상계의 언어같았다.


나의 경험을 미루어 볼 때 자녀들을 무조건 믿어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모처럼 세 아들이 수련회에 가서 집을 3박 4일이나 비웠다.


아침저녁으로 청소하고 빨래하던 손길은 책도 펼쳐보고 글도 쓸 수 있었다. 오랜만에 휴가를 얻은 것 같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뭘 하든지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고 인정해 주어야겠다.


아이들에게는 잘난 엄마가 필요한 게 아니다. 언제나 믿어주고 인정해 주는 허용적인 엄마가 그들의 인생에는 훨씬 더 큰 도움이 된다.


<딸에게 보내는 연서>

2003년 10월 9일

영아!

수업 끝나고 정보실 오는데 교정에 노란 은행잎이 두둑 떨어지잖니

갑자기 서글퍼져서 은행잎 몇 잎 주웠지.

야 너무 오랜만에 소식 전한 거 알지?

네게서 소식 안 오면 엄마는 궁금해서 별상상 다하니까 엄마가

바빠서 못 보내더라도 너는 매일 엄마한테 일과를 보고하도록

알았지? 이건 엄마로서의 특권이고 명령이다.

요즘 애들은 중간고사 기간이라 열심히들 하고 있단다.

중선이도 성적이 더 이상 떨어지진 않고 중근이는 평균 97점

장담하더니 오늘 아침엔 94점 밖에 안될 거라네

세포가 누나를 닮아서인지 일반 상식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어제저녁 가정문제를 체크해 봤더니 옳은 문제 묻는데

"추석에는 떡국으로 차례를 지내고 "하는 문제를 맞는 답이라고 해서

아침에 나오면서 중선이랑 놀렸지

"중근이는 나중에 추석에 떡국 제사 지낼 거라고"

하여간 우리 집 똘똘이는 잘하고 있어서 엄마가 대견하게

생각한단다.

영아 할 말 많은데 수업이라 나머지는 내일 하기로 하자.

잘 지내라

ㅡㅡ 엄 마 가 ㅡㅡㅡㅡㅡ




<엄마에게 보냈던 딸의 답장>

-----[ 받은 메일 내용 ]----------


제목 : 춥다, 하지만 좋다~


날짜 : Wed, 08 Oct 2003


보낸이 : "zuigao 샨잉" <traceme82@hanmail.net>


받는이 : "향촌" <sansok57@hanmail.net>



*^^*

살이 찌긴 했나 보다~~

연휴기간에 그 오빠가 와서 학교주의 산책하면서

이야기 많이 많이 했어요...

엄마, 참 마음 주고 싶은 사람이고 바다 같은 사람이에요

암튼 하얼빈으로 다시 갔고요, 전 또 열심히 남은 시간 공부하면서 지내야죠*^^*

여기도 정말 추워서 이 옷 저 옷 껴입고 다녀요

겨울 코트를 입으려고 했는데,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서

다음 주부터 입으려고요

이곳에서의 생활 3달 정도만 지난 면 진짜 한국, 우리 집으로 가네요

그냥 잘 먹고 잘 지내다가 갈게요~~ 살찌는 거 상관하지 않고*^^*

중선이 한테도 안부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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