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주의라는 새로운 강박
1. ‘무엇을 먹느냐’는 ‘어떤 사람인가’와 연결된다
21세기 들어 음식은 단순한 섭취가 아니라 자기 표현과 도덕 판단의 장이 되었다.
이제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말은 건강이나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 기후변화·윤리·정체성까지 연루된 선언처럼 들린다.
비건 식단, 저탄고지, 클린 이팅, 간헐적 단식, 슈퍼푸드…
건강을 중심에 둔 식생활 방식들은 어느새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 혹은 ‘더 의식 있는 삶’을 살아가는 신호처럼 기능하기 시작했다.
2. 건강은 개인의 책임인가, 사회의 기준인가
현대 사회는 건강을 ‘의무화’한다.
편의점에서 마시는 두유 한 팩조차 ‘당 0g’임을 자랑하고, 식당은 메뉴판에 열량 정보를 표시한다.
몸매를 유지하고, 소화에 좋고, 장을 살리는 음식들이 마치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인 것처럼 홍보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건강하지 않은 음식은 일종의 ‘도덕적 실패’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기름진 음식, 고열량 디저트, 야식은 단순한 유혹이 아니라 의지력의 부재, 자기관리 실패의 상징이 된다.
3. 음식 앞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회
한 끼 식사에도 “죄책감 없는 먹기”를 추구한다는 광고가 넘쳐난다.
먹는 것이 죄가 된 것이다.
설탕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며 “이건 평소 안 먹는데…”라고 말하는 우리의 말투에는 자기 정당화가 스며 있다.
건강주의가 도덕의 옷을 입으면서, 비건이 아닌 식단, 유기농이 아닌 소비, 칼로리 높은 선택은 스스로 변명해야 할 ‘과오’가 된다.
4. 음식은 계급이 되고, 자본이 되고, 규율이 된다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려면 시간, 정보,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슬로우푸드 식단, 유기농 장보기, 비건 베이커리의 값비싼 메뉴들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다.
결국 건강주의는 도덕이자 계급, 자기절제의 윤리이자 소비의 특권이 된다.
다이어트 앱과 칼로리 카운트, 영양제 구독은 몸을 규율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적 형식이다.
“잘 먹는 것”은 건강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사회가 원하는 ‘바른 삶’을 내면화한 결과이기도 하다.
5. 우리는 어떤 ‘섭생’을 만들고 싶은가
건강주의가 불러온 이 음식의 도덕화 흐름은 분명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모든 선택이 ‘좋고 나쁨’으로 분류되고,
음식이 윤리적 정체성의 지표가 된다면,
우리는 결국 또 다른 소비적 죄의식과 강박적 자기 연출에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
‘우아한 섭생’이란 이름으로 나는 묻고 싶다.
정말 의미 있는 식생활이란, ‘무엇을 먹느냐’보다도
‘왜, 어떻게 먹느냐’를 묻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 글 예고: ‘채식주의와 음식의 정치성’ — 우리는 왜 점점 더 정치적으로 먹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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