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섭생: 시리즈 7]
일본 B급 구르메

저렴한 미식은 가능한가

by 타산지석

1. ‘미식’은 왜 비싸야만 했는가

‘미식’은 프랑스어 gourmet(구르메)에서 유래한 단어로,
음식에 대한 정교한 감각, 고급 취향, 심미적 식사 경험을 뜻한다.
이 관념은 고급 레스토랑, 비싼 재료, 격식을 갖춘 서비스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맛있는 것’은 곧 ‘비싼 것’이라는 인식을 강화해왔다.

그 결과, 저렴하고 서민적인 음식은 미식의 영역에서 배제되거나 ‘하위문화’로 간주되어 왔다.

2. 버블경제기 청춘의 역습

1980년대 후반, 일본 버블경제의 호황 속에서 고급 구르메 문화는 절정을 누렸지만,
정작 돈이 없던 젊은 세대, 특히 대학생들은 그 흐름에 편입될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맛있는 것’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지역 축제의 야끼소바, 철판에 올려진 햄버그스테이크, 소스를 흘린 오므라이스, 지방 도시의 독자적 조합 덮밥…

이들은 싸고 푸짐하고,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진한’ 음식이었다.
이것이 바로 B급グルメ (B-kyū gurume) 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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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브컬처가 된 음식

B급グルメ는 단지 음식의 가격대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중의 감각, 지역성, 유쾌한 실용주의, 반(反)엘리트 미각의 총체였다.

B급グルメ는 일본의 지역 도시마다 자신만의 ‘명물’을 자랑하고,
현지 축제와 연계되며, 음식이 곧 지역 정체성이자 문화 콘텐츠가 되는 흐름으로 발전한다.

지방 창조, 관광 산업, 청년 창업과 결합한 B급グルメ는
일본 사회에 뿌리 깊은 중앙-지방 위계를 식문화 차원에서 뒤흔들었다.

4. 불황기의 대안이 되다

1990년대 이후 이어진 일본의 장기 불황 속에서,
B급グルメ는 단순한 서브컬처를 넘어 생활경제의 실질적 대안이 된다.

‘값은 B지만 만족은 A’라는 말처럼,
푸짐하고 저렴하며, 정서적으로도 충분히 충족감을 주는 이 음식들은
고급 레스토랑을 대신할 뿐 아니라 사회적 자기 위안의 기제로도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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