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포인트 찰리, 브란덴부르크 문, 국회의사당, 유대인학살추모공원
베를린에 도착했다. 7일간의 드레스덴 생활은 뒤로 미루고 오늘, 베를린을 써보도록 하자. 드레스덴에서 아침 9시 40분에 버스를 탔다. 온몸에 문신을 하고 얼굴 군데군데 피어싱을 박은 힙합 잘 할 것 같은 흑인 아저씨가 옆 자리에 앉았다. 혹시나 내가 그의 팔을 살짝이라도 건드려 그의 심기가 불편해질까 봐 긴장했다. 힙합 아저씨가 코를 골며 아주 편안하게 주무시는 것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점심을 조금 넘은 시각에 베를린 Sudkreuzd역에 내렸다. 독일 지상철 S2를 타고 두 정거장을 지나 Anhalter역에서 내렸다. 티켓을 어떻게 사는지, 어느 방향으로 타야 하는지 어리바리하다가, 인자해 보이는 독일인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겨우 숙소에 닿을 수 있었다. 숙소는 Three Little Pigs Hostel. 체크인 시각이 3시라 짐만 맡기고 나왔다.
체크포인트 찰리라는 곳을 찾았다. 베를린 장벽에 있었던 검문소라고 한다. 젊은 군인 사진이 크게 박혀있다. 그 밑에는 3유로를 지불한 관광객과 사진을 찍어주는 군복 입은 아저씨 둘이 있다.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 줄이 10명 내외로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 관심은 체크포인트 찰리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체크포인트 찰리 좌우로 맥도날드와 KFC가 있었다. 고민하다가 맥도날드 안의 열 명이 넘어 보이는 고등학생 줄을 보고 기겁해 KFC에 들어갔다. 징거버거 콤보를 주문했다. 감자튀김 소스를 케첩과 마요네즈 중에 고르라길래, '유럽놈들은 감튀를 마요에 찍어먹나?'하고 마요를 골랐다. 실수였다. 느끼해서 버거만 얼른 먹고 감자튀김은 반 남겼다.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향했다. 동 베를린과 서 베를린을 나누던 곳이라고 한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정면으로 보고 있으면 왼쪽에 미국 대사관이 있고 오른쪽에 프랑스 대사관이 있는데, 나는 여기에 더 눈이 갔다. 뭐랄까 내가 미국인이었으면 좀 든든한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다. 이렇게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는 소매치기와 같은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바로 옆에 내 국가 대사관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안심될 것 같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이외에도 주요국들 대사관이 늘어서 있다고 한다. 또 눈이 머문 곳은 스타벅스였다. 어느 도시든 중심부에는 스타벅스가 있다. 드레스덴도 그랬고, 스페인 마드리드도 그랬다. 생각해보면 광화문에도 스타벅스다. 아마 그 비싼 땅에서 스타벅스가 커피를 팔아서 이문을 남기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스타벅스는 브란덴부르크 문 앞, 드레스덴 프라거 거리, 마드리드 솔 광장, 같은 곳에 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줌으로써 더 큰 광고 효과를 노리는 게 아닌가 싶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대충 보고 독일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베를린에서 꼭 가고 싶은 곳 가운데 하나였다. 국회의사당을 정면에서 보면 'DEM DEUTSCHEN VOLKE'라고 쓰여있다. '독일 국민을 위해'라는 뜻이란다. 여기는 일반인도 들어가 구경할 수 있다고 해 더욱 들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나는 들어가지 못했다. 미리 예약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숙소도 어젯밤에 부랴부랴 예약한 주제에, 국회의사당 예약을 찾아봤을 리가 없었다. 아쉬운 대로 국회의사당 앞 잔디밭에 누워 멍 때리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유대인학살추모공원은 기대 이상이었다. 들쭉날쭉한 회색 벽들이 울퉁불퉁한 바닥 위에 놓여있었다. 바닥이 평지가 아니기 때문에 관광객이 어디에 서 있어도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한다는 설명이다. 내가 느낀 바는, 그 길쭉한 추모비 사이로 들어가면 혼자인 거 같으면서도, 한 걸음을 떼면 불쑥불쑥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는 점이 독특했다. 그러니까 혼자 걸어가면서도 갑자기 타인을 마주치게돼 화들짝 놀라게 되는 것이다. 사소한 나쁜 마음을 먹는 것조차 불쑥 마주치는 타인에게 들켜버리는 기분을 느끼해해주는 것이 아닐까.
오후 4시, 이제 숙소로 돌아가 체크인을 하고 근처인 유대인박물관에 들를 계획이었다. 막상 숙소에 들어오니 나가기 귀찮아졌다. 침대에서 게으름 피우다가 다섯 시 반이 됐다. 꾸물꾸물 비가 오기 시작했다. 유대인박물관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보기로 했다. 바디워시, 샴푸, 클렌징 폼이 없어 사러 나가야 했다. 하나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샀다. 샤워하고 신을 슬리퍼를 사고 싶었는데 마트에 없어 못 샀다. 오면서 숙소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내가 들어갈 때만 해도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나 혼자 우두커니 구석에 앉아 커리부스트와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이 집 손님이 왜 없지, 혹시 최악의 식당인가'하는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직원은 계속 독일어로만 말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소통은 됐다. 그가 음식을 주고 내가 돈을 낸다면, 그깟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음식이 나오고 손님도 하나둘 들어오자 마음이 놓였다. 듬뿍 쌓인 감자튀김과 굵은 소시지는 퍽퍽하고 느끼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감자튀김을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10.5유로가 나와 팁을 포함해 12유로를 냈다.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독일은 음식에 있어서는 한참 멀었다. 독일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1등은 드레스덴에서 먹은 베트남 음식 분짜였다. 2등은 쌀국수였다.
숙소는 6인 혼성 도미토리룸이다. 2층 침대 세 개가 놓여있다. 나는 1층을 잡았다. 5명이 체크인한 듯하다. 아일랜드 남자 하나, 스페인으로 보이는 사이클 맨 둘, 그리고 내 윗 침대 얼굴을 보지 못한 여성분. 아일랜드 맨은 착해 보인다. 드레스덴에서 여행하고 베를린에 막 도착했다고 말했는데, 잘못 전달된 것 같다. 그는 내게 '그래, 드레스덴에서 대학을 마친 거야?'라고 물었고, 나는 얼떨결에 '응'이라고 대답했다. 두 사이클 맨은 영어가 서툰듯하다. 동병상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