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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라반 Nov 13. 2018

<포퓰리즘의 세계화>

우리는 포퓰리스트로부터 자유로운가

세계적으로 포퓰리스트들의 전성기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최근 브라질까지도 포퓰리스트 정당과 정치인들이 세를 넓히고 있다. 기존 엘리트 정치인들은 속수무책이다. 트럼프는 기득권 정당인 공화당을 장악하고 민주당을 가뿐히 이겼다.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지지를 위해 오바마가 등판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는 못했다. 독일에서는 메르켈이 물러났다. 남미의 트럼프라는 보우소나루는 브라질의 대통령이 됐다.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유행이다. 그럼 한국에도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집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궁금증에 <포퓰리즘의 세계화>(존 주디스, 메디치미디어, 2017)를 집었다.

<포퓰리즘의 세계화>(존 주디스, 메디치미디어, 2017)

저자는 포퓰리즘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좌파 포퓰리즘과 우파 포퓰리즘이다. 둘 다 엘리트나 기득권층과 대립각을 세우고, 포퓰리스트는 국민을 대변하는 자리를 꿰찬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른 점도 있다. 좌파 포퓰리즘은 엘리트 vs 국민의 구도로 이뤄진다. 반면 우파 포퓰리스트는 국민이 엘리트와 충돌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외집단을 응시하게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과도한 난민을 수용하는 정치 엘리트 집단을 비난하면서 국민들이 엘리트 집단뿐 아니라 난민에게도 비난을 쏟게 부추긴다. 이런 점에서 좌파 포퓰리즘은 두 가지 요소(국민, 엘리트)로 이뤄진 반면 우파 포퓰리즘은 세 가지 요소(국민, 엘리트, 제3계급)로 구성된다. 저자는 좌파 포퓰리스트로 버니 샌더스를, 우파 포퓰리스트로 트럼프를 꼽는다. 그 외에도 책은 미국 역사에서 어떤 포퓰리스트들이 있었는지 톺아본다. 최근 유럽 포퓰리스트 사례도 짚는다. 나로서는 들어보지 못했던 정치인들이 많이 등장해 건너뛰며 읽었다.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모두 갈등에 근거한다. 정치라는 것이 결국 갈등을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기에 갈등 자체를 욕할 수는 없다. 차이점은 있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발견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서로의 이익을 주장하되, 어떤 지점에서 협치 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다. 반면에 포퓰리즘은 갈등 자체에 기생한다. 그래서 포퓰리스트는 기존 엘리트 정치권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남발한다. 기존 정치에서 포퓰리스트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갈등이 없어지기 때문에 포퓰리스트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퓰리스트와 기존 정치권의 충돌음이 클수록, 포퓰리스트는 국민의 편이며 엘리트들은 국민에 반하는 악이라는 구도가 명확해진다. 버니 샌더스의 급진적 사회복지 공약이나, 트럼프의 극단적 반이민 정책들이 그렇다.


그래서 한국에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집권할 수 있느냐는 내 물음은? 책에 답은 없었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우선 좌파 포퓰리즘이 나오긴 어렵다. 북한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좌파 포퓰리스트들은 급진적 복지제도를 주창하며 등장했다. 한국에는 아직 빨갱이 콤플렉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이 부담을 안고 성공할 좌파 포퓰리스트를 기대하긴 어렵다. 다음으로 우파 포퓰리즘도 당장은 등장하기 어렵다고 본다. 한국의 지리적 요인 때문이다. 우파 포퓰리스트는 혐오를 이용한다. 이민자, 흑인, 종교를 혐오하고 그들을 편들어주는 기득권 정치와 싸운다. 미국, 유럽, 남미에서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이민자를 욕하면서 성장했다. 진보 정치권은 이민자들을 보호하는 입장이고, 일반 국민들은 이민자를 싫어하니, 이 지점을 파고든 것이다.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 일자리를 다 앗아간다. 저들이 와서 경찰관을 죽일 것이다." 트럼프가 날마다 외치는 이유다. 한데 한국은 지리적 요인으로, 미국이나 유럽에 들어오는 이민자만큼의 외부인이 들어올 가능성이 적다. 우파 포퓰리스트들의 또 다른 무기인 종교도 한국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 여성을 향한 혐오? 이민자와는 다르게 여성은 투표권을 가졌고, 교육 수준도 높다. 물리적 숫자 또한 무시할 수 없으니 가당치 않다.


그러고 보니 골치 덩어리던 북한 덕분에 좌파 포퓰리즘을 막을 수 있고, 강대국 사이에 끼인 덕에 이민자들이 들어오지 못해 우파 포퓰리즘을 방지할 수 있는 건가. 그렇다고 마음 놓고 있을 때는 아니다. 고작 300여 명의 예멘 난민에도 비난 여론이 들끓었던 것을 보니 말이다. 또한, 중국 출신 한국인들에 대한 혐오 심리도 꽤나 위협적으로 보인다. 한국에 혐오문화가 빈번해질수록 포퓰리스트들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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