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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라반 Nov 14. 2018

수능, 마미손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집 앞 고등학교에 레드카펫이 깔렸다. 수능을 앞둔 고3들은 얼굴을 가린 채 웃으며 레드카펫을 밟았다. 고1, 고2 후배들은 선배들의 앞길을 응원했다. "OO고 파이팅!" "수능 대박!"을 외치며 선배들과 하이파이브했다. 학교는 방송으로 마미손의 '소년점프'라는 곡을 틀었다. "와 나 시발 이거 완전히 좆됐네 제대로 빡세게 대가리 깸"이란 가사가 튀어나왔다. 레드카펫 끝에서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아몬드 빼빼로, 초콜릿, 엿이 담긴 봉투를 건넸다. 과자를 받은 고3들은 선생님들과 악수를 하고 학교를 떠났다. 그들은 19년 인생에서 가장 긴장될 하루를 앞두고 있었다.

마미손


나는 2010년 11월에 2011학년도 수능을 치렀다. 매 수능이 그렇듯이 그날도 몹시 추웠다. 추위는 긴장과 함께 내 몸을 흔들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난로 삼아 품 안에 깊이 껴안았다. 아빠의 파란 트럭을 타고 시험장에 도착했다. 적막한 교실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애써 긴장되지 않는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은 희뿌연 담배연기로 가득 찼다.


점심시간에는 새하얀 곰국을 먹었다. 엄마는 아들의 수능을 위해 밤새 곰국을 끓였을 것이었다. 각자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펼쳤다. 아마도 각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면서 속에 부담되지 않는 메뉴를 골랐을 것이었다. 어떤 친구는 제육볶음을 가져왔고, 또 다른 아이는 된장국을 싸왔다. 점심을 먹으면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눴다. "야 수학 왜 이렇게 어렵냐." "쉬웠는데?" 벌써 답을 맞혀보는 애들도 있었다. 듣지 않으려 애썼다.


수능을 마치고는 허무한 기분뿐이었다. 이 시험 하나로 내 인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딱히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좋은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앞길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적이 나오고도 평생 생각지도 않은 전공을 선택했다.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단 한순간도 고민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엇을 전공으로 골라도 평생 생각지도 못한 분야였을 것이었다. 친구들은 각자의 성적에 맞춰서, 고민한 적 없는 학문을 배우러 흩어졌다. 곰국을 함께 먹으며 "이번 수학이 쉬웠다"라고 말했던 친구는 재수에 삼수를 하게 됐고, "어렵냐"라고 물었던 친구는 서울대학교를 거뜬히 들어갔다.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하나도 힘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 수능과 대학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다. 서울대학교를 간 친구는 아직 졸업을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그 친구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삼수를 겪은 친구는 졸업을 해서 금융권 혹은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 친구는 하고 싶은 일이 확실하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대학을 마치고 독일에서 다시 대학교를 들어갔다. 문과였던 그는 이공계로 경로를 틀었다. 나는... 어쨌든 준비 중이다. 그러니까 수능 순서대로 인생이 잘 풀린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이번 수능날은 최저온도 4도로 포근하다고 한다. 추위를 덜었으니 덜덜 떨던 몸도 덜 떨길 빈다. 최선을 다하고 저녁에 마미손처럼 외치자. "내가 여기서 쓰러질 거 같냐 새끼들아, 넘어져도 쓰리고 인생은 길고 내 음악도 길어 모험은 시작됐어." 시험 잘 봤냐고 묻는 엄마 아빠에게는 "OK 계획대로 되고 있어"라고 한 마디 건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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