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서 보수와 진보가 대화할 수 있는 최저점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한국에 오면 어떨까? 그의 경제 관점은 보수일까 진보일까.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시장의 자유를 옹호한 애덤 스미스는 자유주의 경제, 즉 경제적 보수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시장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가 주장한 시장의 자유는 공정한 시장이었다. 시장이 공정할 때, 정부의 개입이 없다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가능할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자유주의적 경제, 보수적 경제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애덤 스미스 조차도 쉽사리 보수에 끼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그는 한국에서 "빨갱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지금 한국 보수들의 눈에는 '공정한 시장'조차 사회주의로 보이기 때문이다.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박종훈, 21세기북스, 2015)는 KBS 경제 기자 박종훈이 쓴 경제 대중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재벌에 유리한 시장 구조를 개혁하고, 부자에 유리한 왜곡된 세제를 고치고, 최소한의 사회 복지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풍부한 예시와 통계 그리고 해외 사례까지 제시한다. 새로운 얘기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여기저기서 한 번쯤 들어본 내용을 잘 정리해서 쉽게 설명한다. 재밌는 것은 그가 2015년에 지적한 문제점이 지금도 여전히 혹은 보다 심한 문제점으로 꼽힌다는 사실이다. 부동산, 최저임금, 청년실업, 출산율 등이 그렇다.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정도면 합리적 보수의 경제라고 인정할 수 있다. 저자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공정한 시장을 조성하고, 시장이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다.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정도를 언급하지도 않는다. 이 정도가 내가 생각하기에 대화가 통하는 보수다. 최소한 공정한 시장이라는 토대에 관해서는 진보든 보수든 '상식 차원에서' 동의할 수 있어야, 철학적 혹은 정치적 가치를 두고 싸워보기라도 할 테다. 이를테면 공정한 시장을 갖춘 다음에야, 시장의 자유를 보다 존중할 것인지 혹은 정부의 개입을 확대할 것인지 토론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보수에서는 그 '상식 차원'의 공정한 시장이라는 토대조차 부정하니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장의 자유가 아니라 시장에서 기업의 무한한 자유를 수호할 뿐이다. 지금 보수가 매력 없는 이유다.
이런 현실은 우리 모두에게 손해다. 자유한국당이 대화가 통하는 수준에 미달하니, 상대적으로 진보로 보이는 민주당에 표를 줄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보다 '상식적'이니 찍는 것이다. 사실 민주당의 경제도 보수인데 말이다. 이런 구조에서 우리는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진보 혹은 보수의 경제를 토론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상식 차원에서 투표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