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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라반 Feb 16. 2024

4시, 추가 입금을 막아라

기자 아들 경찰 딸...엄마가 사기를 당했다②

1월 31일에는 늦잠을 잤다. 전날 야근하고 오전오프라 넉넉히 쉬다가 운동하고 출근하려던 참이었다. 오전 9시가 안돼 눈떴을 때 핸드폰에 친인척의 부재중 전화가 남아있었다. '무언가 잘못됐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사기인지 이상한 걸 당하는 거 같아. 어디 투자를 하는데 며칠까지 돈을 넣어야 한다고, 작은아빠한테도 연락을 하고 그랬나 봐." 고모가 말했다.


"...거기에도 돈을 빌렸어요?"


"지금 어디에 투자를 하고 있는 거니? 얼마를 한 거야? 무슨 4시까지 돈을 안 넣으면 신용불량자가 되고 그런 게 어디 있어."


"저도 몰라요. 4시까지라는 것도 저는 처음 들어요.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요."


"아빠가 전화가 와서 돈을 꾸고...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 뭐 단톡방에서 괜찮다고 괜찮다고 얘기를 한대. 네가 빨리 어디든 전화해서 알아봐라."


곧이어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외할머니에게도 돈을 빌렸다고,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다. 나는 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내가 모르는 내용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동생에게 전화를 해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다. 동생도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 '엄마가 사기를 당한 것 같다'면서도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빠에게 전화했다. 


"엄마가 어디 투자를 했는데 오늘 오후 4시까지 돈을 보내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되고..." 아빠는 예상외로 침착한 목소리였다. 그러면서 유명한 한 증권사에 전화해 자료를 넘기고 내용을 설명해 사기인지 아닌지를 물어보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8천만 원을 넣었고, 오후 4시까지 7천만 원을 더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수익금은 물론 원금도 되찾을 수 있다고.


나는 곧바로 금융감독원에 전화를 했다. 막막한 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내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상담을 하든 신고를 하든 지금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야 맞는 대답이 나올 텐데.


그저 '무슨 단톡방에서...공모주 청약이 당첨됐는데 돈을 기한 안에 넣어야 회수할 수 있다고 하고...며칠 전부터 돈을 급하게 보내달라고...'라며 횡설수설 두서없이 중얼거렸다. 금감원 상담원은 '이상한 것 같은데요.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하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친구에게도 물었으나 공모주 청약을 이름 없는 작은 증권사에서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더구나 원금을 잃는 것을 넘어서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 부끄러웠다.


나는 경찰 출입만 3년을 꼭 채운 기자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은 너무 뻔한 사기 수법이었다. 너무 뻔해서 기사화가 될 수조차 없는 사건이었다.


경찰서에 있는 민원인을 만나면 하루에도 수십 건씩 들을 수 있고, 메일로 한 달에 수십 건씩 제보받으며, 그간 경찰과 검찰에서 수십 번씩 보도자료를 냈을 바로 그런 내용이었다. 피해자들이 '제발 기사화를 해달라'며 부탁해도 '새롭지가 않아서 뉴스가 안됩니다'라며 거절하는 사건들.


그런데 막상 엄마가 당하고 있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사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떻게 100% 확신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정보가 너무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쨌든 오후 4시가 돼 사기 피해가 확정돼야만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건가.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기로 했다. 아는 경찰 형님에게 전화해서 '지금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당장 어떻게 해야 하나'고 물었다.


형님은 당장 112에 전화해서 피싱 범죄 신고하고 계좌지급정지 등 조치를 취하라고 했다. 112에 전화해 흐릿한 정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이 경우는 보이스피싱이 아닌 경제범죄에 포함되는 것 같다고 했다.


피싱 등 몇 가지 범죄에 해당할 경우에만 계좌지급정지 같은 조치를 바로 할 수 있다고도 했다. 경제 범죄라면 피해 당사자를 데리고 경찰서에 가서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아무리 설명해도 피해 당사자는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신고고 뭐고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


추가 입금 시한인 오후 4시까지는 약 6시간이 남았다. 동생에게는 당장 집으로 내려가서 추가 입금을 막으라고 했다. 나도 오후반차를 내고 곧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 부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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