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아들 경찰 딸...엄마가 사기를 당했다④
"나는 그깟 돈 몇천만 원 잃는 거 상관없어. 몇억 원이면 어때. 그 정도로 무너지지는 않을 거야. 내가 진심으로 부탁했던 말을 그냥 져버렸다는 게 더 마음이 아파."
왜 내 말을 듣지 않느냐고, 마지막으로 약속하자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면서 나는 울었다. 버린 돈보다, 평생 함께 살아온 나와의 약속을 엄마가 순식간에 져버렸다는 점이 서러웠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아빠가 말했다.
그렇게 울면서 아픈 말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엄마는 "왜 울어"라며 휴지를 가져와 내 눈물을 닦았다. 피부는 왜 이렇게 상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밥을 먹었느냐며, 먹고 가라고 했다.
"만약 이게 사기가 아니고 정상적인 투자여서, 1억 원을 넣고 3억 원을 가져왔으면 내가 좋아했을까? 나랑 한 약속은 그냥 무시했는데? 나는 그래도 실망했을 거라고." 내가 말했다.
"...그랬을거 같네. 미안..."
"우리 지금까지 쓴 돈은 그냥 잊자. 이제부터라도 더 이상은 하지 않기로 하자 제발."
"알았어...근데 아직 사기당한 거 아니다?"
돈을 입금한 뒤 48시간이 지나면 막혀있는 계좌가 풀리고, 원금은 물론 수익금까지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설득할 힘이 없었다. 동생에게는 이제부터 추가 입금만은 막자고 했다.
오후 4시쯤 아직 한 끼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순댓국을 먹었으나 세 숟가락을 뜨다 놓았다. 도중에 전화가 온 경찰 형님과 통화했다. 돈을 넣은 계좌에 지급정지명령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얘기를 나눴으나, 이미 돈을 빼돌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더구나 피해 당사자를 설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찰 신고를 할 수가 없었다.
신기하게 이날 저녁에는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어쨌든 48시간 뒤면 결과가 나올 것이고, 그럼 어떻게든 뒷수습에 집중하면 된다. 벌어진 일에 몰두하지 말고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밤이 되자 힘들었다. 눈을 감으면 온갖 불안한 생각이 껴들었다. 낮에 내가 너무 아픈 말을 했나. 큰 상처로 남으면 어떡하지. 그 상처가 너무 커서 오히려 잃은 돈을 회복하기 위해 또 돈을 더 보내는 것은 아닐까. 극한의 현실주의자 ISTJ인 나도 안 좋은 상상만 했다.
새벽에 갑자기 전화벨이 울릴까 불안했다. 동생은 연차를 내고 집에서 부모님 곁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