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아들 경찰 딸...엄마가 사기를 당했다⑥
"그냥...노후도 불안하니까...조금만 해보려다가..."
동생이 운전하는 차량의 적막을 깬 엄마의 목소리였다. 사건이 벌어진 뒤 '왜'에 대해 엄마가 처음 한 대답이었다. 나는 동생에게 전화로 전해 들었다.
그동안 유복하지 않았지만 평범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노후에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딱히 걱정도 하지 않았다. 대화가 많은 정다운 가족은 아니었어도 내심 잘 챙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착각이었다.
엄마는 노후가 불안했고, 그걸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걱정을 자식들에게 털어놓는 것조차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작게나마 투자를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손을 댔다가 원금이라도 되돌려 받기 위해 더하게 됐고, 그만 사달이 났을 것이다.
잠긴 계좌가 풀린다는 '48시간'이 되는 2월 2일 점심, 휴가를 내고 본가로 내려왔다. 사기든 아니든 이 시각에는 결판이 날 것이고, 그때는 경찰서에 가자고 말해뒀다.
나는 본가로 내려가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지난 일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고, 오히려 앞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방해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빨리." 본가에 도착한 내가 처음 한 말이다. 부모님도 며칠째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벌어진 일들을 해결하기 시작해야 한다. 금방 끝나지 않을 것이니 밥을 먹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사기꾼들은 이 와중에도 성실했다. 지금 누군가 신고를 해서 세무조사가 들어왔다고, 세금을 먼저 지불해야 원금을 뺄 수 있다고, 옅은 희망을 미끼로 던져대며 끝까지 붙잡았다. 투자를 중도에 그만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협박도 계속됐다.
"매니저라는 사람이 자기 돈 몇억 원을 내 거에 투자를 해줬어. 근데 신고를 하면 우리가 법적으로 당하는 거 아니야?" 엄마가 물었다.
"걔도 다 한통속일 거야. 신고했다고 우리가 법적으로 처벌받을 일은 없어. 그거 다 경찰에 가서 물어보면 돼."
우선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한 뒤 밥을 먹기로 했다. 경찰 출입 기자를 3년 하면서 매일같이 경찰서로 출근을 했지만 이날은 감회가 새로웠다. '출입기잡니다'가 아니라 '민원인이요'라고 말하며 정문을 통과했다.
별관 민원인실에서 "경제 범죄에 연루됐다. 신고를 하러 왔다"고 하니 본관 1층 정문에서 수사관이 마중을 나와있었다. 수사관은 엄마에게 육하원칙을 물었다. 엄마의 핸드폰을 살펴보던 수사관은 침착하게 말했다.
"어머니 이거 사기예요. 얘네들이 하는 말 전부다 거짓말이라고 보면 돼요." 수사관이 말했다. 먼저 사칭 어플에 가입할 때 쓴 신분증을 분실신고하고 재발급받으라고 했다.
이어 신고를 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설명했다. 은행에 가서 입출금 내역을 뽑아와야 했고, 그들과 한 밴드와 라인 대화 내역도 텍스트로 출력해서 가져와야 했다. 수사관은 급한 것은 아니니 오늘 저녁이든 주말이든 준비되는 대로 경찰서를 방문하라고 했다.
돈을 보낸 계좌 두 개의 은행에 방문했다. 엄마는 1월달 6일 동안 한 은행에서 16번, 또 다른 은행에서 3번 총 19번 돈을 보냈다. 대부분 1천만 원씩 보냈고, 1억 원 보낸 적도, 500만 원을 보낸 적도 있었다. 총 3억 원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이었다.
밴드와 라인 대화를 텍스트로 출력하니 수백 쪽이 넘었다. 엄마는 2023년 11월 중순쯤부터 어느 밴드 단체방에 초대됐다. 투자뿐 아니라 각종 정치 뉴스도 난잡하게 돌아다니는 곳이었다. 가끔 투자 실적을 소개하는 글도 올라왔다.
밴드에 들어가 있어도 별일 없었는데, 1월이 돼서 엄마는 투자 상담을 받았다. 박모 팀장이라는 사람과 1:1 대화를 하면서 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전화번호도 모르는 팀장이라는 사람에게 1천만 원씩 보냈고, 팀장이라는 사람은 수익률이라며 캡처 사진을 보내왔다. 물론 거짓으로 꾸며진 사진이었고, 실제로 수익금을 손에 쥔 적은 없었다.
내가 소식을 듣고 호들갑을 떨던 1월 말쯤에도 엄마는 팀장이란 사람과 대화를 했다. 엄마는 '너무 무서워요. 주변에서 사기래요'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법적으로 강경 대응하겠다'란 답장이 왔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던 엄마가 속으로 두려움을 삭이고 있었다. 19번에 걸쳐 돈을 보내면서 한 달 동안 엄마는 얼마나 두렵고 답답하고 외로웠을지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팀장이란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놨을까. 이 상황에서 가장 힘들 사람은 엄마였다.
수사관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진정서를 쓰는데 머뭇거릴 때마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안내해 줬다. 진정서 작성을 마치고 수사관은 말했다.
"입금하신 계좌를 검색해 보니 우리 서에서 작년 말에 이미 신고가 됐어요. 이게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사기 수법이라 사이버수사대에서 모아서 수사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입금하신 계좌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 이건 저희가 할 것 같고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보낸 돈을 찾기는 어려워요. 계좌 주인을 찾아도 00년생 이런 애들이고, 중국으로 돈을 돌렸으면.... 그래도 못 잡는다고는 말씀드리지 않을 거고, 최선을 다해서 해볼게요." 말하는 수사관의 금목걸이가 눈에 띄었다.
신고를 마치고 오후 5시쯤 자주 가던 단골 낙지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배가 부르도록 먹었다.